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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공원 비석, 66년만에 제자리에

구 도청(전라감영) 자리로 이전 27개, 2개는 전주 서문교회 옆에 자리
다가공원 화장실 옆 비석군은 이제는 달랑 3개만 남나

기사 작성:  이종근
- 2020년 05월 31일 14시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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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공원 화장실 옆 비석군이 언제부터 사라지더니 이제는 달랑 3개만 남았다. 나머지 비석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전주시가 전라감영 동편부지 복원을 내달 중순 마무리하고, 서편 부지는 올해 안에 광장 형태로 조성한다. 전주시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전라도 정도 천년을 기념해 시작한 전라감영 재창조 복원이 내삼문과 외행랑 등 2채의 건물을 빼고 완료됐다.

복원 대상은 선화당을 비롯, 내아, 연신당, 관풍각, 비장청, 내아행랑, 내삼문 등 모두 7동이다. 이 가운데 핵심 시설인 선화당은 조선왕조 오백년간 전라도를 다스렸던 최고 통치권자인 전라감사 집무실을 지칭한다. 전라감영 핵심 건물로 전주부성에서 왕권을 상징하는 풍패지관 다음으로 큰 건물이다. 내아와 연신당은 전라감사 가족이 살던 관사, 관풍각은 고위 관료를 맞던 사랑방, 비장청은 전라감사를 보좌하던 벼슬아치들 사무실을 뜻한다. 시는 나머지 2채의 건물 공사가 끝나는 6월 중순 준공식을 열 계획이다.

29일 현장에 가보니 선화당, 관풍각, 연신당엔 편액이 걸렸다. 이 가운데 연신당은 이당 송현숙이 쓴 것으로 확인됐다. 전라감영의 유일한 증거인 회화나무(보호수, 9-1-1-1-1)엔 짙푸른 신록이 무성하다. 담장을 따라 가니 어디서 본듯한 비석 27개가 한일(一)자로 서있다. 판관이돈상영세불망비, 판관민치준영세불망비, 관찰사서기순청백선정비, 관찰사이서구영세불망비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어디에서 옮겨온 것인가.

당초 전라감영의 정문은 포정루(布政樓)였다. 포정루는 명견루(풍남문)가 보이는 도청 동쪽 경계와 전주완산경찰서 동쪽 경계를 잇는 경목선도로 중앙지점 즉 전주상공회의소 앞 사거리로 보인다.1743년에 관찰사 조영국이 신축되어 신문고가 설치되면서 백성들의 민원을 전라감사에게 직소할 수 있었다. 안쪽에는 팔달, 바깥 쪽에는 포정이라는 편액이 있었다. 전주의 중심도시 팔달로 역시 사통팔달이라는 보편적인 의미와 함께 전라감영의 출입문이었던 이 포정루에서 기인한다. 1909년 무렵, 2층 누각 건물이 팔달문이며 그 앞에는 32개의 선정비가 있었다고 한다.

경찰국은 전주 시내 곳곳에 주인없이 넘어지고 파묻힌 비석을 다가산 밑 제방 위로 옮겨 정돈식을 거행, 커다란 비석군을 이뤘다.

1954년 4월 25일 안진길(安晉吉) 전주시장(6~7대) 때 다가공원으로 옮긴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 때문이었다는 후문이다. 때문에 66년 만에 원래의 자리가 있던 곳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한편 김인전 목사 기념비(서은선 짓고 권갑석 쓰다,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관리번호 52-1-32호)와 배은희 목사기념비(조영진 짓고 권갑석 쓰다)가 지역 사회에 끼친 공덕을 기리기 위해 1986년 4월 29일 다가공원 입구에 세워졌다. 2015년 12월 22일 체계적인 시설 관리와 우리나라에 남긴 덕을 기념하고자 하는 설립 취지를 보전하기 위해 전북동부보훈지청, 전주시청 등과 합의, 현 전주 서문교회 내 종탑 옆으로 나란히 이전했다.

그렇게 해서 현재 전라감영에 27개, 서문교회 종탑 옆에 2개 등 29개의 비가 자리하고 있다. 다가공원 원래의 자리엔 3개의 비석이 이번에 자리를 옮기지 못한채 아쉬운 듯 모습을 드러낸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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