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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촉으로 완벽하게 복원해낸 미륵사지 서탑

고 김영택 펜화가 생전에 전북 문화재 4점 그려

기사 작성:  이종근
- 2021년 01월 19일 14시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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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서탑



고 김영택 펜화가가 살아생전에 그림으로 미륵사지 서탑을 온전하게 복원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13일 타계한 김영택 펜화가가 중앙일보, 주간조선에 발표한 작품과 저서 '펜화 한국 건축의 혼을 담다(서울셀렉션)'를 분석한 결과, 펜으로 4점의 전북 문화재를 그린 것으로 분석됐다.

미륵사지 서탑(국보 제11호), 금산사 미륵전(국보 제62호), 완주 송광사 아(亞)자형 종루(보물 제1244호), 선운사 도솔암 내원궁(전북 문화재자료 제125호) 등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 터에 있는 석탑은 온전한 모습이 아니다. 허물어진 것을 일제강점기에 시멘트로 보강해 6층 지붕돌 귀퉁이까지만 남았다. 2001년부터 해체를 시작, 복원 작업을 완료했다. 하지만 9층으로 완전한 복원을 못했다.





금산사 미륵전



그는 어쩔 수 없이 과거 형태에서 약간 보강하는 모습으로 복원한다고 하기에 펜화로 완벽하게 이를 살렸다. 백제 무왕(재위 600~641년) 때 지은 미륵사는 백제 최대 사찰로 높이 50m가 넘는 9층 목탑 좌우에 석탑 2기가 있었다. 동국여지승람에 '동방 석탑 중 최고'라 할 만큼 크고 아름다운 석탑이었다. 신라의 수도 경주 황룡사에 목재로 9층 대탑을 지은 것도 백제인이었다. 미륵산을 배경으로 당당하게 선 서탑에서 백제인의 기개가 보이는 것은 어째서일까.그가 그린 9층 건물의 위용이 당당하다. 주변으로 깔린 낮은 기와지붕이 그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는 양산 통도사와 해인사 일주문,경주 황룡사 9층 목탑,해남 미황사 대웅보전 등 소중한 전통 건축물을 완벽하게 재현했고 유실되거나 손실된 부분까지 펜화를 통해 온전하게 되살렸다.

완주 송광사는 평지 가람으로 산지 가람과 같은 그윽한 멋은 없으나 국내 하나뿐인 아(亞)자형 종루가 있어 건축전문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사천왕문을 지나면 너른 절 마당 왼편으로 특이하게 생긴 종루가 보인다. ‘아자형 종루’라 부르는데 국내에 단 하나뿐인 ‘十’자형 건물아다. 십자형 건물로 창덕궁에 부용정이 있고 수원 화성에 방화수류정이 있으나 전부 변형된 다각십자형 건물이다.





송광사 종루



1857년 중창됐다는 송광사 아자형 종루는 8개의 귀공포와 12개의 주간포 등 처마 밑이 온통 공포로 가득해 꽃다발 위에 지붕을 얹은 것처럼 화려하다. 누마루 중심의 4개의 기둥에는 용 그림이 남아있는데 솜씨가 범상치 않다. 마루 중심에 범종을 달고 사방에 법고, 목어, 운판과 작은 범종을 배치하여 아자형 건물의 모양에 일치시켰다. 작지만 결코 작아 보이지 않는, 공예품같이 아름다운 건물이다. 그는 이를 완벽하게 펜화로 담아냈다.

금산사 미륵전을 마주 보는 방등계단의 5층석탑. 석탑과 부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방등계단의 불탑 위로 아침 햇살이 번지고 있다. 넓고 아름다운 여백의 마당 한가운데서 보리수나무가 선혈처럼 붉은 겨울 열매를 매달고 있다. 마침 가벼운 눈발이 흩날리다가 그친 이른 아침이었다. 사찰마다 특징이 있다. 나주 다보사는 다보보살, 고창 문수산는 문수보살, 금산사는 미륵보살을 모시고 있다. 금산사 미륵전 각층마다 편액이 하나씩 걸려있다. 3층에 미륵전(彌勒殿), 2층에 용화지회(龍華之會), 1층에 대자보전(大慈寶殿)이다.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가 미륵의 세계를 나타낸다. 대자보전이란 미륵이 뜻하는 법어(마이트레이야)를 한자로 번역하여 자씨(慈氏)라고 부르는데서 유래했다.용화지회는 미륵부처님이 서가세존 입멸후 56억 7,000만년이 지나 사바세계에 도래해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용화지회는 미륵의 하생을 뜻한다.





선운사 도솔암 내원궁



'대자보전'은 몽연 김진민선생, '용화지회'는 성당 김돈희선생이 각각 썼다. 상하의 위치는 사제간이기 때문이다. 편액을 써서 매단 연도는 정확치 않다. 한편 미륵전은 작자 미상으로 알려져 있다. 금산사의 중심은 3층 법당인 미륵전이라지만, 진짜 중심은 ‘비워 둠’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미륵전 앞은 담박하게 비워진 너른 마당이다. 오른쪽 대적광전과 맞은편 대광전 등의 법당이 자연스럽게 비워둔 마당의 구획을 이룬다. 이토록 편안한 비워둠이라니. 그는 0.05mm의 가는 펜을 이용해 작품 당 50~80만 번의 펜 터치를 가해 그림을 완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그려낸 미륵전 건축물과 기왓장, 소나무, 바위 등의 세밀한 모습은 사진처럼 정교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준다. 그림에서 나타나는 명암은 작가가 혼신을 쏟아낸 결과다. 금산사 미륵불은 모악산 아래로 후천 개벽을 꿈꾸는 이들을 불러모았다. 좌절하고 상처받은 그들이 데리고 온 고통과 질곡, 믿음과 기원도 그곳에 모였다. 과연 미륵보살이 나타나 현세에서 성불해 세 번의 설법으로 272억명의 중생을 구원한다는 믿음과 비워둠의 미학이 오늘도 여전히 유효한가?

고창 선운사 도솔암에 닿으면 바로 발걸음을 위로 향해 보자. 바위 절벽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과 내원궁이 있다. 마애여래좌상은 높이 15.7m, 무릎 너비 8.5m의 거대한 불상이다. 절벽 앞에는 불상을 감상하거나 기도를 할 수 있는 간이 천막이 있다. 내원궁은 불상이 새겨진 절벽 위에 자리하고 있다. 높이 10m 정도의 좁다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내원궁이 나타난다. 내원궁에는 보물 제280호 선운사지장보살좌상이 모셔져 있다.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꼭 하나는 들어준다고 해서 대학수학능력시험 즈음이면 사람들로 북적인다. 풍경을 감상하고 내려가려 하자 입구를 지키던 한 분이 떡을 나눠준 적이 있다. 자비로운 부처의 마음, 불심(佛心)을 느꼈다. 이같은 사연을 담아 그는 펜화로 이곳을 담아냈다. 펜으로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그린 이곳의 그림은 마치 사진처럼 정교하면서도 살아 숨 쉬듯 생명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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