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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감춘

조윤수

기사 작성:  이종근 - 2022년 05월 25일 15시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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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담장의 고매(古梅) 가지 끝에서는 봄 향기가 터지고 있었다. 세찬 꽃샘바람이 순천만 갈대 사이를 휘돌아 나와 매화 가지에 닿으면 땅 밑에서부터 춘정이 꿈틀댄다. 전염병이 창궐하여 시절이 아주 수상해도 자연의 순환은 어김이 없다.저절로 오고 있는 봄을 미리 내려가 마중하는 성급한 심사를 누가 막을 것인가.‘정좌하여 차를 반쯤 마시니 향기는 그대로인데 묘한 작용 일어나며, 물은 절로 흐르고 꽃은 홀로 피네.’ 추사 김정희의 다시(茶詩)가 떠오른다. 홀로 마시는 차를 왜 신(神)격으로 비유했는지 알만하다.

봄맞이하려 온 천지를 헤매다 돌아오니 뜰 한편에 매화가 피었더라는 옛사람 되어, 봄내음 찻잔에 담고 나 또한 홀로 정좌하여 차를 반쯤 마시자니 묘한 감흥이 일렁인다. 얼굴을 들고 보니 매화 꽃병에서 달보드레한 향기가 차 맛을 돋우어 차 맛인지 매화 맛인지 아릿하기만 하다. 매화는 오래된 가지의 것일수록 그 꽃이 맑고 고아하다. 향기를 풍기고 있는 매화에게 부끄러워 주변을 맑힌다. 꽃가지 뒤로 둥근 거울을 세워두니 거울에 비친 꽃 그림자는 달빛 어린 창가에 드리운 매화 가지를 연상케 하는 흥겨움을 준다.

사군자 중의 매화를 벗에 비유하여 봄에 피는 매화를 고우(故友),오랜 벗), 섣달에 피는 매화를 기우(奇友), 진기한 벗이라 하였다. 겨우내 기우 같은 벗님께서는 악양 매화 밭의 꽃가지를 꺾어 부처님께 헌화한 후 그 꽃을 따서 매화차를 나누어 주시니 찬 겨울만은 아니었다. 오랜 벗과 함께한 겨울이 훈훈했다. 탱글탱글한 꽃봉오리가 따뜻한 기운을 만나니 한 잎 한 잎, 망울을 터트린다. 매화 가지에서 풍겨오는 달착지근한 향기에 젖어 있자니, 옛 선비들의 매화 사랑이 가슴속에서 골을 이룬다.

퇴계 선생은 얼마나 매화를 사랑하였으면 평생 동안 107수에 달하는 매화 시(詩)를 지었고, 91수의 매화 시를 엮은 이란 시집까지 냈을까. 그런 퇴계가 매화보다 맑고 매화보다 향기로운 여인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무심하였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시정이 넘치는 퇴계였으니 명기(名妓) 두향과의 사랑은 애틋하였으리라. 사랑하는 여인을 보듯 매화 사랑은 더욱 깊었을지 모를 일이다. 매화 피는 봄날 아직 바람은 찬데, 단양 호숫가 언덕에 올라 노을을 바라보며 달뜨기를 기다렸으리라.

‘뜨락을 거닐자니 달이 사람을 따라오고 매화 언저리를 몇 차례나 돌았던고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나기를 잊었더니 옷깃에 향내 머물고 그림자는 몸에 가득해라.’

그런 시구를 짓지는 못하여도 그 마음처럼 나 또한 매화 주변을 몇 번이나 맴돌고 찻잔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고…. 그의 이란 시를 보면 그보다 더 화려한 고향의 봄을 어디에서 느낄 수가 있겠는가 싶다.



조윤수 작가는



2003년 '수필과비평' 등단, 수필과비평작가회의, 한국문인협회, 전북문인협회 수필자문위원



저서: '치앙마이 한 달 살이', '혼놀, 혼자 즐기다', '발길을 붙드는 백제탑이여!', '나의 차마고도(茶馬孤道)'- 2015년 세종도서 문학부문 선정 외 수필집 3권



수상: 2020 새전북신문 문학상 공모 대상, 제6회 목포문학상 수필부문 본상, 제3회 행촌수필문학상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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