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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남정 최정균 탄생 100주년 맞이하다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1,2전시실(2층 전관)에서 '남정 최정균 탄생 100주년 기념전 : 싹' 개최

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04월 01일 08시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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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은 13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서울서예박물관 1,2전시실(2층 전관)에서 '남정 최정균 탄생 100주년 기념전 : 싹'을 갖는다.

예술의전당은 남정 최정균(1924~2001)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한국 현대 서예‧미술사에서 남정의 위치를 되짚어 보는 전시를 갖는다.

최정균은 그림과 글씨에 모두 능통했던 우리 시대 최고의 문인화가 중 한 사람으로 1988년 원광대학교 미술대학에 서예학과를 처음으로 창설한 인물로, 작가의 유족이 2006년에 예술의전당에 기증한 대표작 39건 43점에 외부 작품을 더하여 기증의 뜻을 되살리면서 100주년을 기념하는 입체적인 전시로 구성한다.

▲최정균의 그림과 글씨 대표작, ▲작품에 영향을 받은 사승(師承),▲동시대 작가들과의 교유(交遊),▲‘싹’으로 피어난 원광대학교 서예과 작가 등 네 가지 주제로 구성된다.

이번 전시는 최정균의 작품 및 영상 자료 120여 점과 일중 김충현, 운보 김기창 등 교유한 작가 작품 30여 점 등 150여점을 선보인다.

참여작가는 최정균, 손재형, 허건, 현중화, 김기승, 장우성, 김기창, 송성용, 김충현, 여원구, 서희환, 김종범, 소병순, 김양동, 조수현, 정태희, 선주선, 여태명, 김성태, 김종건, 박영도, 손동준, 신현경, 이규복, 이상현, 이완, 진영근, 최미, 최재석 등이다.

이밖에 전시 연계 세미나와 교육프로그램 등을 통해 관객들에게 남정 최정균의 작품 세계와 서예, 문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남정(南丁) 최정균 (崔正均. 1924-2001)은 1924년 4월 20일 임실군 지사면 금평리에서 출생, 본관은 전주이고 , 당호는 난석산방(蘭石山房), 문향제(聞香齊) 등이 있다.

1956년 그의 나이 33세에 원광대학교 문학부 교학과를 졸업, 그 후 원광고등학교 국어교사로 17년 동안 재직했고 1965년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하는 등 국전에서 연 6회 특선을 했다.

1960년 가을 본격적인 지도를 받아 서단에 진출할 뜻을 품고 그는 소전 손재형(素筌 孫在馨 1903-1981)을 찾아가 글을 배운다. 손재형을 만나 스승으로 섬기며 15년간 서예를 배웠다. 이때 남정(南丁)이란 아호를 받았다.

1969년부터 1984년까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와 대한민국미술대전의 추천작가 및 초대작가,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지역 서예계에 활력을 불어 넣어 어느 도시보다 서예 자립의 초석을 다져 주었다. 남정은 강암 송성용, 여산 권갑석 등과 함께 전북 서예를 중앙무대에 우뚝 세우는데 가교 역할을 했다. 그리하여 1965년 전라북도 문학상(미술부분), 1968년 이리시민상을 각각 수상했으며 전북도전 운영위원회 및 심사위원(1980년까지)으로 활동했다. 이후 남정은 익산을 제2의 고향이라 생각하며 제2대 예총 지부장을 역임하면서 지역의 문화예술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또, 1998년에는 원광대학교에 서예과를 창설, 한국서단에 크게 공헌했다. 그는 국전 추천작가, 초대작가, 심사의원 및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면서 중앙에서도 꾸준히 활동했다.

퇴임 후에는 서예과의 발전을 위하여 모든 장서와 서화소장품 및 작품일체를 원광대에 기증했고, 2006년 부인 배수임씨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 최정균의 그림과 글씨 대표작 39건과 43건을 기증, 유작 서화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남정은 여러 화목 중 매화와 연꽃에 정통했다. 글씨는 전서(篆書)의 원필획(圓筆劃)으로 행초서를 구사하는 소전(素筌) 손재형에 닿아있지만 말년에는 자신만의 방필획(方筆劃)을 구사하는 등 서화가 하나되는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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