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인문학 속 클래식] ··· 취미 속 클래식

1.바리스타, 베토벤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60알의 원두, 나에게 60가지 영감을 준다”

기사 작성: 양지연 - 2024년 04월 15일 15시46분

우리나라에 서양음악이 전해진 것은 100년이 조금 넘는다. 한국인 특유의 성실성과 뛰어난 음악성으로 짧은 세월안에 많은 세계적 음악가가 배출되었고 더불어 클래식 음악 시장도 커졌지만 눈부신 성과만큼 클래식음악이 대중들의 생활에 친숙해져 있는지는 의문이다. 아쉽게도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클래식음악은 그저 점잖은 특권층들을 위한 어렵고 지루하며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곳에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바하,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차이코프스키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클래식음악의 대가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생활인이였다. 그들은 천재적 재능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 신음하며 고뇌하였다. 그렇게 남겨진 그들의 음악은 찬란히 음악사를 수 놓으며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인문학 속 클래식]에서는 거장들이 남긴 삶의 흔적인 클래식음악을 현대를 사는 우리의 삶과 연결짓고 재발견해보고자 한다.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미술, 건축, 문학, 신앙, 취미 등의 다양한 인문학 분야와 클래식의 연결고리를 찾아 클래식을 보다 현실감 있고 생생하게 느껴보고자 한다. [인문학 속 클래식] 연재를 통해 펼쳐질 클래식 음악가와 그들의 명곡에 숨어 있는 삶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클래식음악의 참 재미와 매력을 재발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편집자주

#취미 속 클래식

새해를 맞은지 오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따뜻한 봄기운이 완연하고 다채로운 봄꽃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시간의 마디를 맞이할때면 시들해진 삶에 무언가 새롭고 신선한 자극을 시도해 보곤 한다. 특히 쌀쌀함 속에서 느껴지는 숨길 수 없는 봄의 약동하는 기운은 익숙함을 벗어나 낯선 나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그 어느때보다 간절해지는 시기이다. 그 간절한 소망을 부담없고 건강하게 이룰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취미를 갖는 것 아닐까.

취미의 사전적 의미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즐기기 위해 하는 것’, ‘감흥을 느끼어 마음이 당기는 멋’이다. 즉 취미란 머리보다 마음으로, 이성보다 감성으로 먼저 느껴지고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취미 속 클래식]을 통해 ‘클래식 음악’이 독자분들의 새로운 ‘취미’가 되고 이를 통해 독자분들의 삶에 소소한 여유와 즐거움이 더욱 가득해지길 소망하며 클래식 음악가들의 독특한 취미와 그에 관련된 음악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바리스타, 베토벤

‘악성(樂聖)’ 베토벤은 커피매니아였다. 괴팍하고 고집불통의 성격으로 유명했던 베토벤은 의외로 심플하고 규칙적인 삶을 살았는데, 베토벤의 하루 첫 일과는 타거나 벌레 먹지 않은 깨끗한 원두 60알을 손수 세어 당시의 최신 커피메이커인 ‘퍼컬레이터(percolator)’로 추출해 마시는 것이었다고 한다.

오전에 작곡하는 걸 좋아한 베토벤이 바쁜 아침, 한알 한알 끙끙대며 커피 원두를 고르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니 웃음이 나면서도 그의 음악이 가지고 있는 깐깐함과 집요함을 떠올리면 금새 수긍이 간다. 커피를 창작의 큰 자양분으로 삼았던 베토벤은 이런말을 남겼다고 한다.

“매일 아침 나는 더할 수 없는 내 벗과 만난다.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60알의 원두는 나에게 60가지 영감을 준다.”

어슴프레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 베토벤의 음악과 함께 에스프레소를 한잔 하면 우리 삶에도 베토벤의 에너지와 영감을 기대할 수 있을까.

베토벤의 집을 방문했던 사람들의 후술에선 베토벤의 방을 온통 가득채우고 있던 어지러운 악보들만큼이나 커피 이야기가 자주 언급된다. 베토벤은 자신의 집을 방문해 준 지인들에게 손수 고른 원두로 내린 맛 좋은 커피를 자랑스레 대접했을 것이고 커피와 함께 많은 음악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이처럼 커피는 그의 삶과 음악세계에 큰 자양분이 되었으니 오늘날 우리가 베토벤의 명곡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상당부분 커피의 덕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커피향에 기대어 베토벤의 인생을 생각하니 그의 가곡 ‘Ich liebe dich(이히 리베 디히)’가 떠오른다. 독일어 ‘Ich liebe dich’는 영어 ‘I love you’와 같은 말이다.

베토벤은 ‘합창’, ‘운명’, ‘영웅’ 등의 교향곡과 ‘함머클라비어 소나타’, ‘크로이처 소나타’와 같은 형식과 내용면에서 밀도 높은 대규모의 기악곡들을 남겨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가 중 하나로 여겨진다. 하지만 가곡 ‘Ich liebe dich’와 ‘엘리제를 위하여’처럼 단아하고 소박한 음악으로도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이 가곡은 1991년 발표된 가수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의 도입부에 쓰여 국민적인 사랑을 받은 바 있는데, 독일어로 쓰인 가곡의 가사를 번역하면 아래와 같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듯이,

저녁에도 사랑하고 아침에도 사랑합니다,

그대와 나 함께, 이제까지 하루도

서로의 짐을 나누지 않은 적 없죠.

또한 당신과 함께 나누었기에

우리는 힘든 일도 쉽게 이겨낼 수 있었죠.

당신은 슬픔에 잠긴 나를 위로해 주었고,

나는 당신의 슬픔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대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빕니다,

그대, 내 삶의 기쁨이여.

신께서 당신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함께할 수 있도록 언제나 보호해주실 것입니다.”

가사를 음미하며 음악을 들으니 마치 베토벤이 음악으로 삶의 교훈을 주고 있는 듯 하다. 곰곰이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평소 사랑의 말보다는 불평과 분노, 질책과 힐난의 말들을 훨씬 많이 했던 나를 발견하고 후회가 가득하다. 특히 가족,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욱 그런 것 같아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가까운 지인들과 따뜻한 커피 한잔을 나누며 쌓인 얘기를 나눌 커피 약속을 잡아야겠다. 이야기의 시작은 꼭 ’바리스타 베토벤‘의 커피이야기로 하리라 다짐해본다.

가곡 ‘Ich liebe dich (나 당신을 사랑하오)’ 연주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zN4tm—TeQE

■이주용 교수는

예원, 서울예고, 연세대학교 졸업

독일 쾰른 음악대학 전문연주자(K.A) 과정졸업

독일 데트몰트 음악대학 최고연주자과정(Konzertexamen) 졸업

서울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금호아트홀,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등에서 다수의 독주회 및 실내악 연주 개최

독일 Coselpalais Dresen, Piano Nobile Kammersaal Berlin, Alte Börse Leipzig 초청 독주회 개최

수원시립교향악단, 대전시립교향악단 협연

'세계사를 품은 클래식음악', ‘책으로 만나는 클래식', '그림 속 클래식' 등 수차례의 인문학 클래식 콘서트 개최

현) 전주대학교 음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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