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오늘과 내일]법 없이도 살 사람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1월 07일 15시16분

필자 할머니는 1911년생으로 1986년에 75세로 돌아가셨다. 우리나라 5천년 역사상 어려운 세대가 두 번이 있었다. 첫 번째가 임진왜란·병자호란에 사신 분이었다. 두 번째가 한일합방·일제시대·대동아전쟁·해방·좌우익갈등·한국동란· ·4·19·5·16이다. 가난, 굶주림과 추위를 다 겪으셨다. 나중에 좀 살만하게 되니까 돌아가셨다.

굶주림과 영양실조의 결혼생활이었다. 아이 10명을 낳아 7명을 생존시켰다. 할머니가 30세에 할아버지가 일본으로 징용가셨다. 기적적으로 해방 전에 귀국하셨다. 얼마나 고생을 하셨는지 이미 많은 지병을 얻어 가지고 오셨다. 같이 갔던 동네 두 분은 일본에서 돌아가셨다.

해방 직후에 남로당에 도장빌려준 것이 좌익으로 분류되어 1948년도에 경찰에서 한 달 내내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 무죄임이 밝혀져 아버지가 지게를 할아버지로 모셔왔다. 징용 때 잃은 건강에 더하여 거의 노동력을 상실하여 1960년도 초반에 돌아가실 때까지 고생만하셨다.

모든 생활계책은 오로지 할머니 혼자 감당하셔야 했다. 변변한 논밭도 없었다. 오로지 끼니를 거르지 않기 위해서 큰 집 일 도와주고, 누에치기, 베짜기, 하숙, 비럭질, 품앗이 등등 안 한 일이 없었다. 1970~80년경에 천신만고 끝에 먹고 살만해지자 당뇨병을 얻었다. 지금은 흔한 의료보험 혜택 한번 못 보고 돌아가셨다.

지금도 내가 이렇게 살 수 있는 도덕적·양심적 기초는 할머니의 음덕이 100% 일 것이다. 이렇게 배를 고파가면서도 가난하게 사셨음에도 지키시는 두 가지 생활 철칙이 있었다. 우리 할머니가 나쁜 말을 하실 줄 아는 단 한마디는 “빌어먹을 놈”이었다. 즉 얻어먹는 거지와 같은 놈이라는 뜻이다. 그 어려운 가운데에도 공짜와 무노동에 의한 이익 보는 자체를 흉보셨다. 그래서 여러 욕 중에서 오롯이 빌어먹을 놈이 최상의 그리고 유일한 나쁜 말이셨다.

두 번째가 “법 없이도 살 사람”이었다. 저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하면 도덕적이나 인격적으로 흠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 모범이 되는 사람들을 일컫는 최상의 언어였다. 물론 할머니가 이런 말을 할 때는 어렸기 때문에 간간이 쓰였던 이러한 말들의 깊은 뜻을 몰랐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먹어가면서 이러한 말뜻이 점점 부각되는 것은 우리나라가 처해있는 상황과 많이 부합된 때문이 아닐까? 우선 빌어먹을 놈이라는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 사람처럼 공짜를 좋아하지 않은 민족도 없다. 가난하게 살아도, 먹을 것이 없이 살아도, 무엇인가 일을 하고 보상에 맞는 일을 하여야 한 다음 대가를 받았다. 헐벗은 민둥산에 녹화사업을 할 때도, 굶주린 가족들 허기를 때우기 위한 밀가루 한 됫박을 배급 받기 위하여 산등성이에 나무를 심었다. 선심성 무상분배를 철저히 배제하여 현재 우리나라가 선진국과 강대국이 된 것이라고 판단한다.

한편, 인구가 늘어나고 고도사회가 되면서 과거의 사회를 다스리는 양심과 도덕률 시스템만으로는 어렵게 되었다. 예전에 없는 법률 케이스가 점점 생겨나고 더욱이 근본 도덕과 양심만으로도 얼마든지 지킬 수 있는 사회시스템이 서구화와 여러 문제로 점점 복잡하게 된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학교의 자체정화 및 상벌기구가 있어서 교내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제는 사회의 법조계에 직접적으로 의뢰하는 것이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되었다. 특히 지도교수가 엄연히 있는 대학원 석·박사과정에서도 지도 교수보다는 법조계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 중에 하나이다. 윤리·도덕교육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현재 정치·사회·경제 모든 곳에서는 국민들이 이해할 수없는 법률용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법 없이도 살 사람”의 기본 원칙이 생각나는 것이다.

이제 2025년은 대한민국의 또 다른 운명이 결정되는 중요한 해이다. 이런 때일수록 원칙에 충실하여 “빌어먹을 놈“이 되지 않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이 되는 기초적 윤리도덕률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강길선 (교수, 전북대학교 고분자나노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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