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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한가운데]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1월 08일 16시13분

“엄마 너무 추워, 차속에 잠깐 있을께 해뜨면 얼른 불러줘”

십여년전 아이들과 함께 여수 오동도에 새해 첫날 해맞이 여행을 갔다. 너무 추워 무릎 담요까지 뒤집어쓰고 발을 동동 구르던 찰나 바다위에 해는 자동차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떠버렸다. 아쉽게도 밤새 고생이 헛수고가 되었다며 아이들 지청구가 아직도 들리는 듯 하지만 찰나와 순간을 알아채는 것이 지혜라고 생각해본다.

올해는 새해 첫날을 신구영신예배로 아이들 부부까지 함깨하고 차를 마시며 한해를 축복하였다. 하지만 한달전 ‘12.3 내란사태’로 마음은 평화롭지 못하다.

소박하지만 나름 새해를 맞이하는 루틴이 있다. 항상 12월이 되면 직원전체 새해 수첩을 마련하고 개인적으로는 1년동안 기억하여야 할 대소사를 음력으로 양력으로 표시도 하며 단체 활동 계획도 세운다. 어느덧 매년 동안 기록한 수첩이 30여권이 넘어 비밀인양 상자속에 보관하고 있다. 이유는 틈틈이 마음이 흔들 때, 속상할 때 일기처럼 넋두리가 쓰여 있어 감추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해 10여일도 지났음에도 눈에 미세먼지가 잔뜩 낀 것 같고, 안개가 자욱한 산속을 해매는 것처럼 깊은 잠도 자지 못하며 남들이 보면 유난을 떠는 것처럼 힘이든다.

이럴때는 버릇처럼 책을 집어든다.

박완서 작가님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이다. 1970년에서 2010년까지 쓴 에세이 35편을 읽다보면 진부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옆에서 조근조근 전하는 어머니 말씀 같다.

작가는 사위를 얻을때는 그저 보통사람으로 욕심내지 않는 척했지만 실은 욕심 안부린다는 말처럼 앙큼한 위선은 없다며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는 글을 읽으며 나는 딸아이 배우자감을 고르며 위선과 오만은 없었는지 생각해본다.

새해소망이라는 수필에서는 “또 한 살 먹는구나. 설이 심란하다가도 몰라보게 자랐을 손자들 조카들 세배 받을 생각을 하면 슬며시 웃음이 난다. 어렸을 적에는 늙은 사람을 보면 저렇게 늙어서도 사는 재미가 있을까 의심했는데 사는 재미란 죽는 날까지도 있게 마련인가보다.“

나역시 아직 손자는 없지만 앞으로 겪게 될 예고편 같은 나이가 되어가니 늙어도 죽는 날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책을 읽다보니 소박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삶의 지혜가 가득하였지만 최근의 12.3내란 사태에서 작가가 살아계신다면 ‘모래알만 한 진실’에서 어떤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줄지 궁금하다.

계절은 겨울 한복판에 와있다. 매서운 추위와 함께 눈도 내린다. 은박지를 뒤집어쓰고 밤새 눈을 맞으며 탄액봉을 흔들며 광장을 빛의 바다로 만드는 우리 청년들과 집회시민들이 따뜻한 방에서 어여 쉬게 하어야 한다. 어느 식물학자는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이 겨울을 버티기 위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상상조차 힘들지만, 때론 마지막 잎까지 떨군후 앙상한 가지만 남긴채 최소의 에너지로 겨울을 버티는 식물의 지혜를 배워야 하고, 지금의 비상계엄 선포로 놀란 가슴과 분노하는 마음도 식물의 생존전략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최소에너지가 바닥이 나기전 ‘모래알만 한 진실’을 요구하는 것 조차 무리인가?

그렇다고 빛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최근 칼럼에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교수는 트럼프를 겨냥해 “시민이‘최악에 의한 통치’에 맞선다면 더 나은 세상으로 향하는 길을 찾을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길‘을 찾기위해선 결국 언제 어디서든지 위기를 극복할 주체는 깨어 있는 시민이다’

이제 새해이다. 소중한 일상이 망치지 않토록 ‘모래알만 한 진실’을 기본으로 모두가 살아가는 시간이 오길 간절히 기원한다.

/김보금(한국여성소비자연합 전북지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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