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아침발걸음]12.3 비상계엄과 『소년이 온다』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1월 13일 15시12분

12.3 비상계엄령 발표한 때는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3분경이었다. 긴급 브리핑을 통해 윤석열은 종북과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고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겠다는 미명 하에 전국단위의 비상계엄을 선포함에 따라 계엄사령부를 설치하고 계엄군을 동원하여 국회,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 등에 진입 및 점거를 시도했다. 이는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이 군사력을 동원해서 입법부를 무너뜨리고, 헌법기관인 선거관리기관을 장악함으로써 현직 대통령이 자국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와 헌법적 절차와 국민 기본권을 짓밟은 전대미문의 친위 쿠테타이자 내란을 일으켰다.

이러한 일련의 계엄 정국은 선포 다음날인 2024년 12월 4일 오전 1시 1분경 국회의 비상게엄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 처리에 따라 2시간 1분 만에 법적 효력을 상실했으며, 같은 날 오전 4시 26분경 대통령실에서 계엄 해제를 발표하고 오전 4시 30분 국무회의 의결로 계엄 해제를 선포함으로써 약 6시간 만에 사건이 종료되었다. 이 6시간은 너무 길었다. 우리 국민은 TV앞에서 가슴을 조이며 긴장상태에 들어갔다. ‘아, 오늘 또 다시 5.18의 악령이 되살아나는가?’하는 조바심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는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1980년 5.18민주화운동의 현장이 이 소설의 배경이다. 15세의 어린 동호가 사건의 중심에 서 있다. 소년 동호는 참혹했던 5.18 당시 계엄군의 총에 맞아 죽은 친구 정대를 찾기 위해 시체안치소에서 시신을 관리하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시신관리를 하던 중, 소년 동호도 역시 계엄군의 총에 사살을 당하였다. 소년 동호의 죽음은 민주화운동 당시의 참상(慘狀)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이에 대해 김숙 님은 『전북문학』(2024년 발간, 통권 297호 , pp.151-2)에서 “이 소설은 쇳소리와 핏자국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아니다. 다만 5.18이라는 역사의 그 흔적이 남긴 역사적 상처와 인간의 고통, 우리의 아픔이 담겨 있다. 동호의 시점과 주변 인물의 시점을 통해 사건의 잔혹성과 살아남은 자들의 후유증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사실 치유는커녕 우리의 고통을 외면하고 왜곡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시민적인 연대만이 사회적 치유와 회복이 가능함을 말해준다.”고 언급하였다.

사실, 우리 사회는 지만원씨 같은 극우 인사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근현대사 왜곡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2011년 5월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의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가 최종 심사 결과만을 남겨 두었을 때 지만원은 5·18이 북한군의 학살이라고 주장하면서 유네스코 본부에 반대 청원서를 제출했으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는 지만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만장일치로 5·18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했다. 또한 2013년 1월 29일,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일성과 짜고 북한 특수군을 광주로 보내 광주시민들이 학살당했다”라고 주장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재판에 넘겨진 지만원에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최근의 극우파들이 이와 유사한 양태를 보이고 있어, 지난 5.18 민주화운동 역시 현재진행중임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소년이 온다』는 이런 역사적인 비극을 잊으면 언제든지 5.18과 같은 사태가 재연(再演)될 수 있다고 경고(警告)하고 있다. 마치 그 경고가 딱 들어맞는 예고(豫告)라는 듯이, 2024년 내란 수괴가 버젓이 12.3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실패하였다. 이것이 실패했으니까 망정이지 친위쿠테타가 성공했더라면 또 한 번 크나큰 유혈 사태와 국가 위기를 초래할 것이 자명하다.

『소년이 온다』는 12.3 사건의 사전 예고이다. 그래서 이 책은 더욱 위대한 책(great book)이다. 명작으로서 우리 민족에게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가져다준 수상작이라서 위대하고, 우리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여 12.3 계엄조치를 저지하는 원동력이 되어준 책이라서 더욱 위대하다.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과 맞서 그들의 진입을 저지하고 설득한 국민의 자주정신이야말로 한국 민주주의의 원동력이다. 강추위 속에서 윤씨의 탄핵과 처벌을 위해 광장에 모인 국민들이야말로 민주 한국의 자존심이다. 5.18로 온갖 고초를 겪은 우리가 어찌 다시 12.3으로 신고(辛苦)를 겪으랴.

『소년이 온다』 전두환 내란 수괴에 의해 자행된 온갖 만행을 적확(的確)하게 고발한 작품이다.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민의 한맺힌 원한과 단장(斷腸)의 고통을 몸서리칠만큼 정확(正確)하게 그려내어 국민의 심금을 울린 명작이다. 2021년 어느 방송사 인터뷰에서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쓸 때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고통(苦痛)이었다고 고백하였다. 소설을 쓰는 동안 매일 울었다고 말하였다. 이 작품은 사실 그 울음의 고통 속으로 독자를 끌어당긴다. 다시는 그와 같은 참변(慘變)을 피하기 위해서, 조국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 고통의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피눈물을 흘린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년이 온다』는 우리 민족의 ‘통곡의 벽’이다. 5.18, 그 일이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기에 우리 민족은 통곡의 벽을 붙잡고 실컷 울어도 좋다. 몸이 휘청거려도 좋다. 봄은 다시 돌아올 테니까.

/유종국(문학박사·전 전북과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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