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기고]지송(遲松) 백원철 교수 서거 2주기에 붙여

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1월 16일 13시21분

2025년 1월 8일은 지송 백원철 교수 서거 2주기 날이다. 지송 선생은 1985년에 '초등학교 선생님'이란 시를 썼다.

“아이들 몽당연필이나/ 깎아 주면서/ 아이들 철없는 인사나 받아 가면서/ 한 세상 억울한 생각도 없이/ 살다 갈 수만 있다면/ 시골 아이들 손톱이나 깎아 주면서/ 때 묻고 흙 묻은 발이나/ 씻어 주면서 그렇게/ 살다 갈 수만 있다면.”

어린 학생들을 사랑하는 그윽한 마음이 듬뿍 배어 있다. 시의 행간에 읽히는 텅 빈 마음, 욕심 없는 순수한 마음에 이끌려 내 마음도 씻기는 기분이다. 세태에 편승하지 않고 진솔한 사랑으로 자유롭게 사는 일상일진대, ‘응당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금강경의 글귀가 뇌리에 겹친다.

선생은 중·고등학교 다닐 때 방학 중에는 외조부로부터 천자문, 명심보감, 동몽선습, 사자소학 등을 공부하였다. 초등 교사이면서도 타는 목마름으로 더 깊고 넓은 한학에 대한 지평을 열고자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에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하였다. 공주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학들을 가르치셨다.

6대조 할아버지를 모시는 수원백씨 종손인 지송 선생은 58세인 2004년에는 고향에 월곡서재를 설립하였다. '월곡서재'라는 한시에는 귀향의 정이 묻어 있다.

‘고향 떠나 떠돌며 세월만 보냈으니/ 도를 배움에 이룸 없이 반백 년을 넘겼네/ 이제 수구초심으로 고향으로 돌아오니/ 책을 펴보다 싫증이 나면 호미질을 배우리라.’

귀향하여 20년 동안 생활하면서 선생은 몇 번의 호미질을 하셨을까. 호미 대신 논어로 마음 밭을 가신 선생은 고창 군립도서관에서 ‘고전강독회 반’을 운영하셨다. 고전강독 강의에서 뜻 붙이시고 말씀에는 힘이 배어 있다. “사람에게는 인품이 있듯 고장에는 품격이란 게 있습니다. 고창의 품격에는 선비정신, 항일 의사 정신, 상부상조 정신 등 정신문화를 찾아야지요. 광복 이후 맥이 끊긴 이러한 자산들을 새로 발굴하고 정립하는 데 여생을 바치고 싶습니다.” 2022년 가을에 선생은 건강이 악화하여 애석하게도 나와는 두 차례의 강의를 끝으로 불귀의 몸이 되었다. 김구 선생이 그렇게 원했던 ‘높은 문화의 힘’을 선생께서도 군민들의 문화적 소양을 높이고자 애쓰셨다. (사)고창문화연구회 회장으로서 향토사와 향토문화 조사 연구에도 매진하셨다. 매년 ‘고창의 마을’ 책을 발간하고 고창의 역사와 문화를 찾았으며 당산 문화에 관한 연구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을 바로 알아가는 ‘고창의 뿌리 찾기’ 사업도 펼치셨다. 지송 선생의 저서 '의향 고창과 더불어 살기'는 주옥같은 고창의 문화, 인물, 의향의 역사를 샅샅이 연구한 결과물이다. 1부는 의향의 역사와 문화, 2부는 의향의 인물과 정신, 3부는 의향에 새긴 말과 글, 4부는 귀향의 설렘, 더불어 사는 행복으로 구성되어 있다.

58세에 귀향한 지송 선생과 달리 나는 65세에 귀향했다. 2022년 9월에 지송 선생과 택산헌 경수산방에서 만났다. 인문학자와 생물학자의 첫 만남이었으나 오래된 인연 같은 느낌이었다. 나의 장형과 고교 동문이라서 더 반가웠다. 고향의 품에 안긴 지 20년 된 지송 선생과 2년째인 나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고창의 인물 문화 역사를 들춰서 고창의 시대정신을 찾고자 하는 일치점이 있어 놀랍고도 흥미로웠다. 귀향하여 호미질하고 삽질하는 자연인처럼 살면서도 자신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찾는 거는 당연한 일일 거다. 취석 송하진 지사의 도록, '거침없이 쓴다'의 내용에서 ‘사원(思源)’이란 글씨에 마음을 빼앗겼다. 주석에는 ‘근원을 생각한다. 음수사원(飮水思源)의 사원을 쓰다.’ 물을 마시면서도 그 근원을 생각한다는 말이다. 한강은 검룡소에서, 낙동강은 황지연못에서, 섬진강은 데미샘에서, 금강은 뜸봉샘에서, 영산강은 용소에서 발원하고, 주진천이라 부르는 인천강은 고수면 은사리 명매기 샘에서 시작하여 좌치나루에서 바다와 만난다. 음수사원이란 자연과 함께 사는 분이라면 모름지기 자연에 깃든 그 근본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는 말이다. 김구 선생의 좌우명인 음수사원은 독립운동의 근간이고 결기였을 터. 지송과 내가 찾는 근원은 크게 보면 대한민국의 역사요 작게는 고창의 정신일 거다.

나태주시인이 공주문화에 기고한 글에 지송선생의 인품을 회고했다. ‘지극히 유교적이다. 삶이 올곧다. 인자한 인상이다. 말씀은 자분자분 조용하다. 생각은 그윽하고 겸손하다.’ 내가 하나 덧댄다면 인문학자로서 품격을 지니셨다. 인간의 가치인 존엄의 향기를 온 고을에 풍기신 큰 어른이시다. 아이들의 몽당연필을 깎아 주시던 그 마음으로 한문학을 통해 고창 군민의 시대정신을 일깨우시고 개개인의 마음에 기쁨과 행복을 안겨주셨다. 고창을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살만한 세상으로 푸르게 푸르게 가꾸면서 우리 마음을 빗질하신 정원사이셨다.

오늘따라 고전강독 강의실에서 성독(聲讀)의 소리가 울려 퍼졌던, 그날이 그립다.

/임동욱(호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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