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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재발견]군산, 예술로 흐르는 새만금-동아시아 문화중심의 가능성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5월 20일 15시24분

군산은 더 이상 과거에 머물 수 없는 도시다. 식민지 수탈의 상징이었던 내항과 미두장, 산업과 철도, 구도심의 풍경 등, 이주와 저항의 기억을 품은 군산은 이제 새만금이라는 세계적 인공 대지를 배경으로 새로운 문화 전략을 필요로 한다. 새만금은 409㎢의 광활한 간척지와 세계 최장의 방조제, 그리고 고군산군도를 품은 독보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 지역은 기능 없는 땅, 계획만 존재하는 공간으로 머무르고 있다.

원래는 식량안보를 위한 농지 확보를 목적으로 출발했으나, 2008년부터 산업, 관광, 물류, 신재생에너지 등 다양한 용도로 그 방향이 전환되었다. 이제, 문화적으로는 완전히 ‘백지’ 상태인 이 거대한 간척지를 자연•역사•도시를 관통하는 통합적 문화지형으로 새롭게 설계할 때가 되었다. 개발이 아닌 문화적 상상력이야말로 진정한 지역 재도약의 열쇠다. 예술은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고, 문화는 사회를 유연하게 연결하는 접착제다. 새만금에 필요한 것은 농지와 첨단 산업단지뿐 아니라 다양한 층위의 예술과 시민이 상호작용하는 열린 공간이다. 그래서 제안하고 싶은 것이 ‘새만금 대지미술제’다.

일본의 세토우치 트리엔날레는 참고할 만한 좋은 사례다. 이는 일본 시코쿠 주변의 열두 개 섬을 무대로 3년마다 열리는 국제예술제로, 전 세계 예술가들이 폐허가 된 섬마을에 작품을 설치하고, 마을 주민들이 이를 함께 운영한다. 낙후된 지역이 예술로 세계와 연결된 대표적 성공사례다. 그러나 세토우치는 해상 이동이 필수이고, 전시 공간이 분산되어 접근성에 한계가 있다. 반면 새만금은 광활한 육상 간척지와 도시 접근성, 해양 경관이 동시에 존재하는 복합문화무대다. 도시 중심에서 예술의 대지로 이동하는 간편함, 해양과 내륙을 아우를 수 있는 입지, 교통 인프라의 개선 가능성은 새만금만의 고유한 장점이다.

‘새만금 대지미술제’는 미개발 대지를 예술로 전환하는 도전이다. 국내외 설치미술가들의 작품이 넓은 평지에 흩어지고, 관객은 이동하면서 대지를 걷고 풍경을 해석하며 예술을 감상한다. 선유도의 망주봉을 배경으로 조명예술인 프로젝션 맵핑(Projection Mapping) 공연, 고군산군도의 해안, 방조제 쉼터 등은 예술과 자연, 기술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공공예술 플랫폼을 만들 수 있다. 일본 세토우치가 바다 위에서 예술을 경험하게 했다면, 새만금은 도시, 바다, 대지가 연결된 더 확장된 예술지대로 발전할 수 있다.

이 미술제에 ‘새만금 국제재즈페스티벌’을 결합하면 문화축제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미술제의 설치공간을 무대로 세계적인 재즈 아티스트들의 야외 콘서트가 열리고, 사운드가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대지 위에서 관객은 음악과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여기에 대규모 오토캠핑장과 글램핑장을 배치하면, 휴양과 예술, 지역의 일상성과 세계적 예술성이 함께 머무는 새로운 축제 경험을 만들 수 있다.

또한 이 지역은 상시적 관광과 시민체육활동을 위한 기반으로, ‘파크골프장’을 고려할 수 있다. 파크골프는 전 연령층은 물론 가족 단위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스포츠로, 조성비용이 적고 경관 친화적인 활용이 가능하다. 예술작품과 어우러지는 ‘예술공원형 파크골프장’을 도입하면 축제와 일상의 접점을 만들 수 있고, 비시즌에도 관광 유입을 유도할 수 있는 문화•체육 융합형 관광모델로 성장할 수 있다.

이 문화 흐름은 군산 구도심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세계거리음악축제’ 등을 통해 내항과 미두장, 철길마을, 구시장, 골목길 카페 등이 거리공연 무대로 전환되고, 시민과 예술가, 지역 상인이 함께 참여하여 정체된 구도심을 문화의 거점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이는 단지 이벤트가 아니라, 삶의 방식과 도시 정체성을 바꾸는 예술적 도시재생이다.

새만금은 더 이상 개발계획의 대상이 아니다. 문화적 비전을 가진 대지로 재인식되어야 한다. 새만금이라는 공간, 고군산이라는 자연, 구도심이라는 기억이 만나는 군산은 동아시아 문화지형에서 새로운 중심이 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자본이 아니라 상상력, 구조가 아니라 기획이다. 새만금은 이제 군산은 물론, 전북특별자치구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예술의 대지가 되어야 한다.

필자 | 정대경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과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삼일로창고극장 대표를 역임했다.

/정대경( 공연연출가.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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