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메아리]한글날에 다시 묻다: 우리의 거리는 한글을 품고 있는가?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9월 28일 14시16분

10월 9일은 1446년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하여 만든 새 문자, 훈민정음의 반포를 기리기 위해 지정된 ‘한글날’이다. 문자 보급이 곧 민생의 토대라는 믿음에서 출발한 이 기념일은, 문자 앞에서 누구도 차별 받지 않게 하겠다던 다짐을 해마다 새롭게 한다. 1926년 첫 기념식을 시작으로 해방 이후 이름을 달리하던 기념일이 오늘의 한글날로 자리 잡기까지, 우리는 한글이 단순한 문자 체계를 넘어 국민 주권과 민주주의, 문화적 자존의 기둥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왔다.

한글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이름 그대로, 쉽고 정확하며 논리적인 문자다. 자음과 모음의 원리와 발음 기관을 본뜬 설계, 소리와 글자의 1:1 대응은 배우기 쉽고 가르치기 쉬운 문자 혁신이었다. 이 덕분에 우리는 빠른 근대화 과정 속에서도 높은 문해력을 확보했고, 교육·행정·과학기술의 영역에서 시민 누구나 지식과 정보에 접근 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이처럼 문자와 시민권은 별개가 아니다. 읽고 쓰는 힘이 곧 삶의 선택지를 넓히고,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민주적 역량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글이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매우 높다. 세계 곳곳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인구가 꾸준히 늘고, 한글을 활용한 디자인과 콘텐츠가 도심의 간판과 박물관, 글로벌 브랜드의 협업 작업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다. K-드라마, K-팝, K-푸드의 확산은 단지 유행을 넘어, 한글 자체에 대한 호기심과 존중을 동반하는 문화 현상으로 성장했다. 세계가 한글의 조형성과 합리성,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사람을 중심에 두는 철학’을 발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정작 우리의 일상은 어떨까? 길거리를 다니다보면, 한글은커녕 외국문자가 난무하고 있으며, 이곳이 한국인지 타국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이다. 이에, 전통문화 도시 전주가 한옥과 한복을 내세우면서도 거리의 간판은 외래 문자인 현실을 돌아보고자 지난 4월 제419회 임시회에서 「보이는 전통에서, 읽히는 전통으로- 한글 간판 문화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제로 5분발언을 했다. 이를 통해 전통의 외형만 소비하는 ‘전시용 전통’이 아니라, 삶의 문장과 골목의 글자에서부터 전통의 정신이 읽히도록 도시의 언어 환경을 바꾸자는 제안을 했다.

구체적으로 한옥마을, 풍남문, 전주향교 등 역사 문화 핵심 구역을 ‘한글 간판 지구’로 지정해 거리 자체의 정체성을 설계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소상공인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간판 교체 비용 일부를 지원하고, 지역 예술인·디자이너와 협업해 가독성과 미감을 갖춘 표준 시안을 제공하는 ‘맞춤형 디자인 지원’을 추진할 것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가게 한글 간판 달기 운동’, ‘아름다운 한글 간판 공모전’등 시민 참여형 캠페인을 통해 행정, 전문가, 시민이 함께 도시의 언어를 재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한글은 우리 문화의 그릇이자 미래의 언어 자원이다. 전주가 먼저 ‘읽히는 전통’을 선택할 때, 세계는 전주를 통해 한글의 품격을 배울 수 있다. 한글날을 맞아 우리는 다시 다짐해야 한다. 아름다운 글자에 걸맞는 도시 문화를 만들겠다고, 누구나 쉽고 안전하게 정보를 읽을 수 있는 도시로 나아가겠다고 말이다. 전주시의회와 시민을 대표하는 시의원으로서 저 또한 의정의 자리에서 제도의 문을 열고, 예산의 다리를 놓고, 시민과 함께 그 길을 닦도록 노력하겠다.

간판은 결국 도시의 얼굴이자,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두가 매일 마주하는 생활 교과서이기도 하다. 읽히는 도시가 곧 배움의 도시이고, 배움의 도시가 전주의 품격을 완성 한다. 옛것을 익혀서 새것을 안다는 뜻의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과 같이 옛것을 따듯이 익혀 오늘의 삶 속에서 새롭게 꽃 피우는일, 그것이 한글을 사랑하는 가장 현대적인 방식이다. 한글날을 맞이하여 진정으로 우리는 한글을 품고 있는지 다시금 되돌아 보고, 행정과 의회와 시민이 각자의 역할을 다해 함께 지키고 함께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온혜정 의원(전주시의회 복지환경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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