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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타루비


기사 작성:  이종근
- 2020년 07월 02일 09시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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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헌 이하곤(李夏坤·1677-1724)은 '남행집(南行集)'을 통해 일찍이 호남인들에게 '삼불여설(三不如說)'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소위 여자가 남자만 못하다(女不如南), 배가 무우만 못하다(梨不如菁), 꿩이 닭만 못하다(雉不如鷄)는 것이 그것인데 이를 경험해보니 과연 그러하다고 했다. 현재 전주에는 ‘사불여설(四不如說)’이 전하고 있다. 이는 양반이 아전만 못하다(班不如吏), 기생이 통인(通引)만 못하다(妓不如通), 배맛이 무 맛보다 못하다(이불여청, 梨不如菁), 아무리 좋은 술이라도 안주만 못하다(주불여酒不如肴) 등이다. ‘통인(通引)’은 관아에 딸려 잔심부름을 하던 벼슬아치를 말한다. 이렇게 보면 담헌시대와 일치하는 것은 ‘이불여청’ 단 하나뿐이다.

전북 기념물 제83호 타루비(墮淚碑)는 장수군 천천면 장판리 장척 마을의 산 기슭 도로가에 자리하고 있는 비다. 현감을 따라 순절한 통인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타루(墮淚)’란 눈물을 흘린다는 뜻으로, 중국의 양양 사람들이 양호(羊祜)를 생각하면서 비석을 바라보면, 반드시 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고사성어에서 인용했다.

1678년 당시 장수현감을 지내던 조종면은 민정 시찰을 나섰다가 이곳 산비탈길을 지나게 됐다. 요란한 말발굽 소리에 놀라 숲 속에 있던 꿩이 소리치며 날아오르고, 이로인해 현감의 말이 덩달아 놀라 한쪽 발을 잘못 디디게 되어 결국 벼랑 밑으로 떨어져 말과 함께 현감도 목숨을 잃고 말았다. 뒤따르던 통인이 이 광경을 보고는 자신의 잘못으로 현감이 죽게 됐다고 통곡하며 손가락을 깨물어 벼랑 위에 꿩과 말의 그림을 그리고 ‘타루’라는 두 글자를 쓴 후 스스로 몸을 던져 순절했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장수현감으로 부임해온 최수형이 이 사연을 전해듣고, 주인을 따라 죽은 그 충성스런 의리를 널리 알리고자 비를 세워 ‘타루비’라 이름짓고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비각 안에 모셔둔 비는 1802년에 세웠으며, 받침부분이 부러져 다시 보수했으나 역시 볼품이 없어 1881년에 지방민들의 뜻을 모아 ‘장수 순의리비’를 다시 세워 옆에 함께 모셔두었다. 성이 백씨라고만 전하는 이 통인은 논개, 정경손과 함께 장수지역의 삼절(三節)로 추대되고 있다. 비각 옆 바위 윗면에는 같은 날 생을 마친 조종면 현감을 기리는 ‘불망비(不忘碑)’라는 글귀가 남아 있어 감회를 가져다 준다. 민선7기 2주년을 맞은 오늘,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던 목민관의 존재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가 아닐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종근(문화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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