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문화로 이야기꽃]박사골의 ‘찻집 박수다’, 이야기꽃 피는 곳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6월 04일 14시54분

전국 어딜 가도 면사무소 앞은 늘 비슷한 풍경이다. 트럭이 씽 지나가고, 구부정한 할머니가 보건소 앞에서 옆 사람과 두어 마디 나누는 장면. 전국 제일의 박사골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그 박사골 면사무소 앞 문화복지회관 1층에 작고 예쁜 찻집이 하나 생겼다. 이름이 ‘찻집 박수다’. 아마도 마을 이름 ‘박사골’과 ‘수다’를 합친 말이거나 ‘박사골 수다방’의 줄임말 같다. 그런데 이 이름이,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 맞은편에 있는 ‘Tea and Tattle’—말 그대로 ‘차와 수다’와 너무 닮아 있어서, 처음 본 순간 깜짝 놀랐다. 세계적인 도시 런던과 산골마을 박사골 사이, 물리적 거리는 수천 킬로지만 마음이 쉬는 방식은 그리 다르지 않다. 런던이든 농촌이든, 차 한 잔과 수다 한 줌이 사람 마음을 살린다는 건 참 신기할 만큼 똑같다.

‘찻집 박수다’는 단순한 찻집이 아니다. 자녀들을 유학시키려고 이 곳에 이주한 젊은 엄마들이 자격증을 따서 직접 운영한다. 커피, 블루베리차, 유자차가 싼 값에 나온다. 가격보다 더 따뜻한 건 이곳의 분위기다. 이곳은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이야기꽃을 피우는 온실이다.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날은 따뜻헌디 무릎은 왜 이리 시리당가?”, “손주가 이번에 상을 탔당만 그려~”, “요 앞 밭에 멧돼지가 또 내려왔대 금매,,” 이런 말들이 쉼 없이 오간다. 외로움과 고립이 노년 건강을 위협하는 ‘조용한 전염병’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박사골 주민들은 이 찻집에서 치료하는 셈이다.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떨고, 또 함께 웃는다. 마치 몸이 아니라 마음에 백신을 맞는 것처럼. 사람들이 모여 앉아 화제는 끝없이 흐른다. 서로의 말에 웃어주고, 맞장구치고, 소소한 걱정도 나누며 안심한다.

박사골엔 꽃이 많아 ‘꽃대궐’이라고 부른다. 길가의 화단엔 금잔화, 팬지, 백일홍이 차례차례 피고 진다. 그런데 이 꽃대궐은 식물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다. 환하게 웃는 얼굴이 좋은 ‘낯꽃’, 수줍은 고백과 자랑이 넘치는 ‘이야기꽃’, 그리고 함께 피어나는 ‘웃음꽃’이 이 마을의 진짜 풍경이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수다’다.

수다는 소음이 아니고 남 흉보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건 ‘당신이 여기 있음’을 확인해주는 일이다. 정서적 고립은 조용히 스며드는 독과 같지만, 수다는 그 독을 씻어내는 웃음의 해독제다. 매일 한잔의 커피와 함께 나누는 몇 마디 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챙겨주고, 마을은 다시 살아난다.

사람들은 복지를 거창하게 말하지만, 복지란 아주 작고 구체적인 일에서 시작된다. 뜨거운 찻잔을 내밀며, “따뜻하게 드세요”라고 말하는 순간. 누군가의 말을 고개 끄덕이며 끝까지 들어주는 순간. “그럼 어쩌누” 하는 짧은 탄식이 위로가 되는 순간. 박사골의 ‘찻집 박수다’는 그 작고 구체적인 복지의 이름이다.

농촌은 지금 인구감소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있다. 일자리가 없고, 젊은이는 떠나고, 집집마다 불이 일찍 꺼진다. 그런데 박사골 만큼은 다르다. 어린 학생들이 늘어나 빈집을 고쳐 들어와 살고 있다. 이곳 찻집 안에서는.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커피를 마시며 TV드라마 이야기를 나눈다. 이곳은 정신건강센터이자 감정방역소다. 누구든 들어와 “오늘은 그냥 좀 힘드네”라고 말할 수 있고, “그래도 같이 살아야지”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다.

복지는 꼭 제도 속에만 있는 게 아니다. 말 한마디, 손 건네는 인사, 뜨끈한 찻잔 안에 담긴 관심이다. ‘찻집 박수다’는 이 모든 걸 실현해내는, 아주 조용하지만 강한 복지현장이다. 이 찻집 덕분에 웃음꽃이 피고, 이야기꽃이 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고립되지 않고, 마을은 공동체라는 이름을 다시 되찾는다.

박사골 꽃대궐은 마음의 풍경이다. 화단에 핀 꽃보다 더 찬란한 건, 사람들 사이에 피는 대화의 꽃이다. 그것이 ‘찻집 박수다’에서 매일처럼 피어난다. 꽃이 피는 마을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이흥재(한국전통문화대학교 초빙교수)

전북을 바꾸는 힘! 새전북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새전북신문 기자의 최근기사

[문화로 이야기꽃]박사골의 ‘찻집 박수다’, 이야기꽃 피는 곳

[문화로 이야기꽃]박사골의 ‘찻집 박수다’, 이야기꽃 피는 곳

[달그락]AI 윤리 문제 인지의 필요성…. 청소년들이 생성형 AI에 의지하는 태도 버려야

[사설]새 정부, 낙후 전북 지원 늘려야

[오늘의 길목]머리위에 왕관을 쓴 뿔제비갈매기

[알림]전주웨딩거리 와글와글시장가요제 참가안내

[사설] 도시환경 변화 반영해야

[온누리]두 눈의 하모니, 입체시

[독자시] 21대 대통령 선거

[독자시]6월의 노래

[사설] 음주운전 후 ‘술타기’ 음주측정 방해행위 사라져야

Leave a Comment

많이 보는 기사

살기 좋은 도시 완주에서 성악의 향기 전해

사전투표하는 시민들

사전투표하는 서거석 도교육감 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