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조선 최대의 항구 ‘삼개’는 왜 그 이름을 잃어버렸을까?

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8월 13일 11시22분

'우리말 지명의 재밌는 역사 이야기(지은이 이기봉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관, 펴낸 곳 푸른길)'는 오랫동안 고문헌을 연구해 지은이가 직접 들려주는 지명 50선이 담겨 있다. 우리가 관성적으로 불러온 ‘한양’이란 이름의 기원, 우리나라의 수도를 말하는 고유명사이자 수도의 뜻을 가진 서울이란 지명의 지위, 기적처럼 도로명주소로서 되살아난 아름답고 재미있는 지명 이야기들이다.

따지고 보면 너무나도 직관적인 이름 ‘아끔말(앞쪽 끝에 있는 마을)’, ‘뒤끔말(뒤쪽 끝에 있는 마을)’은 듣기에도 정감이 간다. 잣나무가 많을 것만 같은 ‘잣고개’의 ‘잣’은 성(城)의 우리말이어서 근처에서 산성을 찾는 재미가 있다. 동산을 굳이 우리말로 적으면 똥뫼인데 동쪽의 산이나 마을 부근에 있는 작은 산이나 언덕이 원래의 뜻이 아니라 ‘사람이 눈 똥만 한 뫼(산)’로 막연히 떠오르는 크기보다 훨씬 더 작아야 한다. 지금은 이름에 ‘똥’이 들어가는 것을 꺼려 대부분 사라진 지명이다.

삼개나루가 지금의 어디인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한자의 뜻을 빌려 麻(삼 마)와 浦(개 포)로 적은 삼개는 나중에 한자의 소리로 읽게 되면서 지금의 마포로 불리게 되었다. 조선 최대의 항구 삼개나루가 마포가 된 까닭이다.

망향의 슬픔을 안고 흐르는 임진강에서는 밀물 때마다 바닷물이 육지 깊숙이 거슬러 오르고, 그 마지막 지점인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에 고랑개나루(高浪浦津)가 있었다. 깎아지른 용암 절벽이 이어지고, 작은 틈새의 통로로 깊고 잔잔하며 맑은 호수 같은 임진강이 보인다. 옛날에는 바다배와 강배가 정박해 끊임없이 물건을 싣고 내렸고, 일제강점기 때만 하더라도 화신백화점의 분점이 들어설 정도로 번성한 도회지였다. 아쉽게도 6·25전쟁 후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이 되면서 사람이 하나도 살지 못하는 쓸쓸한 지역으로 변했다.

지금은 방문이 자유롭지만, 번성했던 흔적은 안내 표지판의 설명문에서 겨우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참 안타까운 역사다. 고려시대의 고랑개나루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번성했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전체와 경기도의 남동부, 강원도의 남부 사람들이 수도 개성을 오갈 때 모두 고랑개나루에서 배를 탔다. 원래 장단 고을의 땅이어서, 장단에 있는 아주 중요한 나루란 의미의 ‘長湍渡(장단도)’라 기록했다. 맑고 잔잔한 임진강이 수직의 용암 절벽과 어울려 멋진 풍경을 만들고, 수도 개성의 임금과 고관대작이 찾아와 뱃놀이를 즐기는 풍류의 장소도 됐다.

조선 건국 2년째인 1393년, 태조 이성계가 정도전과 함께 고랑개나루를 찾았다. 그때 정도전이 읊은 시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렇게 전한다.‘가을 물 맑고 맑아 하늘같이 푸르고, 한적한 날 임금께서 뱃놀이에 나섰네. 사공들아, 長湍曲(장단곡)을 부르지 마라. 지금은 조선이 개국한 지 두 번째 해이니라’

장단곡은 고려의 태조 왕건이 장단을 방문했을 때 고을 사람들이 그의 업적을 칭송하며 부른 노래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여유롭게 풍류를 즐기는데 사공들이 장단곡을 부르고 있으니 난처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의 내용을 보니 큰 벌을 주지는 않고 조용히 타이르는 선에서 마무리한 듯하여 다행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 땅 위에 자리 잡은 지명 이야기는 우리 선조의 이야기이자 우리말 사전이 된다. 알고 있던 것을 확인하는 것만큼이나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그리고 내가 알던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반전은 더더욱 즐겁다. 이 책에서 알고 있던 것을 새롭게 확인하는 통쾌함과 예상했던 이름의 뜻을 자주 빗나가는 반전의 즐거움을 함께 느껴 보기 바란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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