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풀베기·풀뽑기·농약 주기… ‘삼락’(三樂) 앞서 ‘삼고’(三苦)

‘어쩌다 농부’의 인생삼락 ④잡초 대전

찌는 더위에 마스크 쓰고 농약… 한 시간만에 녹초
잡초와 병충해 걱정없는 연과 설탕단풍나무가 효자
잡초 같은 적응과 번식력 갖춘 작물은 언제쯤 나올까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9월 11일 14시13분

자두밭이 왕바랭이 피 새포아풀 방동사니 등 잡초 속에 파묻혀 있다. 아무리 풀을 베고 뽑고 약을 뿌려도 2, 3주만 되면 잡초는 2년생 자두나무만큼 자라있다.

8월의 꿉꿉한 열대야가 식어가는 새벽녘, 아버지와 함께 일찌감치 전주 집을 나섰다. 이날도 낮 최고기온 36도를 넘을 것이라는 예보가 나온 가운데 성질 급한 태양은 벌써부터 나무 사이로 이글거리고 있다.

“요샌 비가 가끔 내려서 연밭에 물은 부족하지 않을 거여. 군데군데 무성한 풀만 쳐내면 되겠는데 이렇게 더워서 할 수 있겠나.”

아버지는 차에 오르며 “1주일 전쯤 밭에 다녀왔다”면서 “지금은 가도 특별히 할 일이 없다”는 걸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막상 가보면 항상 할 일이 적지 않았다. 전주에서 삼락원까지는 차로 약 1시간 거리. 그동안 해는 마이산 능선을 넘으며 본격적으로 대지를 달구고 있다. 차에서 내리니 풀냄새를 머금은 뜨거운 열기가 콧속으로 훅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힌다. 그래도 진안은 전주보다 평균 기온이 3, 4℃ 정도 낮다. 고원지대인 진안은 평균고도가 350m. 해발 100m 올라갈 때마다 기온이 1℃씩 내려간다는 말이 맞는 듯하다.

아버지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밭 위쪽 연밭으로 휘적휘적 가신다. 40여평 정도 되는 연밭에는 촘촘하게 자리잡은 연들이 해를 향해 높이 치솟고 있다. 보통 연 줄기는 1m 내외이지만 퇴비를 듬뿍 머금은 연들은 햇빛경쟁을 벌이며 2m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지난해부터 키운 연은 현재 밭작물 가운데 작황이 가장 좋다. 워낙 성장속도가 빠르다보니 다른 풀들이 맥을 못 춘다. 병충해도 없어서 약을 뿌릴 필요도 없다.

여기에 비하면 나머지 밭은 늘 잡초로 덮여 있다. 불과 20여일 전에 제초제를 뿌렸는데도 아무런 표도 나지 않는다. 작약과 백합 등 여러해살이 꽃들은 갈 때마다 잡초에 포위돼 고사 직전에 내몰리고 있다. 올해 심은 대추나무는 가지 몇 개 뻗었지만 주변 풀들에 압도당해 겨우 숨만 쉬고 있었고, 자두나무 몇 그루는 이미 잡초에 둘러싸인 채 말라죽고 있었다.

밭을 뒤덮고 있는 잡초는 주로 바랭이 왕바랭이 피 새포아풀 방동사니 명아주 까마중 환삼덩굴 망초 돼지감자 등이다. 특히 볏과 식물인 바랭이와 새포아풀 피 까마중 강아지풀이 극성이다.

작업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장화를 신은 후 낫을 들었다. 맨 처음 눈에 띈 왕바랭이를 향해 호기롭게 낫을 몇 차례 힘차게 휘둘러보았다. 새로 장만한 낫에 잡초 밑동이 싹둑싹둑 잘려나가는 게 시원했으나 몇 발짝도 가지 못해서 숨이 찼다. 온 힘을 다해 풀 스윙을 한 탓이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아버지가 “안 될 것 같다”며 손을 내젓는다.

“그렇게 해서 언제 다 하려고? 남은 제초제 뿌리자”

제초제는 ‘풀에신’ 유제로 물에 희석하여 쓰는 친환경 농약이다. 제초제는 대부분 광합성 작용을 억제하거나 아미노산 또는 지질 합성을 저해하는 화학물질로 만든다. 과거에는 제초제라고 하면 대표적인 맹독성 농약이었으나 요즘엔 친환경으로 바뀌었다. 대신 약효는 크게 떨어진 것 같다.

20 ㎏ 농약통을 어깨에 멨다. 꽤나 묵직했다. 오른손으로 살포기를 들고 왼손으로 펌프질을 했다. 태양열과 지열을 온몸으로 받으며 마스크까지 쓰고 움직이다보니 온몸은 금세 땀으로 범벅이 됐다. 어깨와 양팔이 아파오다가 얼마 후에는 무감각해진다. 500평도 채 안되는 밭이 만주벌판처럼 느껴진다. 지옥이 따로 없다. 농약통을 두 번 채워서 뿌리기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렸다. 뜨거운 태양아래서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일단 그늘로 가고 싶었다.

“아버지. 점심 드시러 가시죠~” 1시간 남짓 짧은 시간이지만 그새 더위를 먹은 것처럼 두통과 메스꺼움이 생긴다. 이날 밥보다 차가운 물만 벌컥벌컥 들이키다보니 결국 배탈이 나고 말았다.

잡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쑥쑥 자라는 설탕단풍나무. 올 3월에 심을 때 젓가락만한 묘목이 지금은 2m가 넘을 정도로 컸다. 이 정도의 성장 속도라면 4, 5년 후 시럽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정확히 2주후 다시 밭을 찾았다. 처서가 지났어도 8월의 태양은 식을 줄을 몰랐다. 그 사이 제초제 효과로 잡초가 말라죽으면서 맨땅이 보인 곳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잡초왕국’이었다. 오히려 지난번보다도 상태가 더 나쁘다. 특히 제초제 공격을 이겨낸 왕바랭이는 키가 웬만한 자두나무보다 컸고 줄기도 손가락만큼 두꺼웠다. 이건 도저히 풀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다. 이러한 잡초들을 보면 나무가 풀보다 더 진화한 식물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이번엔 얼마 전 새로 장만한 신형 예초기를 동원했다. 혼다 엔진을 장착한 예초기는 날카로운 엔진소리가 힘찼지만 억센 잡초 앞에서는 그다지 힘을 쓰지 못했다. 특히 왕바랭이는 밑동이 굵은 데다 몇 개 씩 모여 있으니 잘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유연한 풀이 바람을 타고 권투선수가 ‘위빙’하듯이 전후좌우 상하로 움직이다보니 한 번에 조준하기가 쉽지 않다. 점점 예초기가 무거워지고 팔이 아파온다. 결국 ‘처삼촌 묘 벌초’하듯 큰 잡초만 대충대충 잘라내고 한 시간만에 작업을 끝냈다. 그런데도 팔을 들어 올리지 못할 정도로 근육이 말을 듣지않고, 손가락마저 덜덜 떨렸다. 돌아서는 나를 향해 잡초들이 비웃는 것 같다. “이제 그만 포기하시지~”

도대체 이놈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어떤 놈들이길래 이처럼 인간의 첨단과학과 기술을 무력화하는가? 이날 작업을 마무리 하고 잡초에 관한 책들을 찾아보았다. 잡초에 대한 연구는 꽤나 많고 흥미로웠다. 잡초는 일반적으로 ‘부적절한 장소에서 자라는 식물’을 가리킨다. 미국잡초학회는 ‘인류의 활동과 행복과 번영을 거스르거나 방해하는 모든 식물’로 정의했다. 한마디로 인간이 의도하지 않은 곳에 자라면서 재배 작물의 성장을 방해하는 풀이라고 할 수 있다.

뽑히고 잘린 잡초가 좀비처럼 살아날 수 있는 비결 중 하나는 생장점의 위치에 있다. 즉 줄기와 잎을 자라게 하는 생장점이 줄기 밑동에 있어서 줄기를 베어도 금방 또 자랄 수가 있다. 게다가 생장점이 여러 개라서 한 곳이 없어져도 다른 곳에서 싹이 나온다. 또 뿌리채 뽑혀도 그 자리에서 또 금세 나온다. 그것은 잡초가 씨앗을 부지런히 만들어 떨어뜨려 놓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원을 씨앗생산에 얼마나 분배하느냐는 지표를 ‘번식분배율’이라고 하는데 잡초는 이 비율이 매우 높은 편이다. 연구자료에 의하면 사방 1㎡, 깊이 2㎝ 밭에는 잡초 씨앗만 4만~8만개가 있다고 한다. 한 개체에서 떨어지는 평균 종자 수는 200여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10%만 발아한 후 90%는 2, 3년간 땅속에서 기다리다가 차례로 싹을 틔운다. 그러니 아무리 뽑아도 다시 그 풀이 그 자리에서 날 수 있다.

한마디로 잡초는 악조건 속에서 적응하고 번식하는 능력이 매우 탁월하다고 할 수 있다. 잡초는 어떤 환경도 수용하거나 극복하고 변화를 기회로 삼고, 빠르게 성장하는 동시에 유연하게 적응하며, 상처를 입어도 놀라운 회복력을 보인다는 점에서 배울 게 참 많다. 원수 같은 잡초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게 아이러니이다.

찰스 다윈은 진화론에서 “가장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가장 현명한 자가 오래 사는 것도 아니다. 변화하는 자만이 유일하게 살아남는다”고 강조했다. 그걸 제대로 실천한 식물이 바로 잡초이다. 그러니 인간이 아무리 잡초를 퇴치하기 위해 용을 써봐도 1만년이상 인간의 박해를 견디고 살아남은 잡초를 이길 수는 없다.

미국 사상가이자 시인 랄프 왈도 에머슨은 잡초를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식물’로 규정했다. 많은 학자들도 잡초가 언제 우리에게 유용한 식물이 될지 모른다고 보고 있다. 쑥이나 미나리가 잡초이지만 훌륭한 약초와 채소로 쓰이듯 수많은 잡초들의 가치를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올해 봄에 퇴비를 듬뿍 뿌린 연밭에서 연들이 성인 키보다 훨씬 크게 자랐다. 아버지가 연밭에서 일을 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잡초는 3만종으로 추산되고 농사를 방해하는 건 250종 정도라고 한다. 이렇게 많은 잡초가 언제 어떻게 귀한 약재와 채소로 바뀔지 모르지만 당장은 농부들의 돈과 에너지를 빼앗아가는 주범일 뿐이다. 재미있는 건 잡초를 정작 재배하려면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잡초방제학 연구자들은 잡초를 연구하기 위해 키워야 하는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시간에 맞춰 물도 주고 햇빛에 잘 노출시키고 하면 자라지 않고 오히려 무관심하게 내버려둬야 그나마 조금씩 자란다고 하니 참 희한한 일이다. 우리 농작물들이 잡초처럼 자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본다. 오랫동안 연구해온 전문가들조차 이런 문제엔 아직 이렇다 할 단서조차 찾지 못하는 걸 보면 그런 걸 기대하기에는 요원한 것 같다. 앞으로 10월말까지 두어 번은 더 잡초와의 싸움을 해야 한다. 한자어로 ‘쓸 고(苦)’자가 초두 밑에 있는 것이 실감나는 때이다. /최진환(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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