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전북미술사 5-①] 전북의 사찰건축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02.03.03 14:23

불교의 전래는 우리의 정신문화 뿐 만 아니라 물질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건축문화도 불교의 전래이후 더욱 발전하게 됨으로써 삼국시대 본격적인 목조건축의 시대를 여는데 기반이 되었다. 백제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침류왕 원년 384년이다. 백제는 한반도 중서부에 자리하여 일찍이 고구려와 밀접한 문화교류가 있었으며, 중국의 선진문화를 흡수 발전시켜 일본과 신라의 고대 문화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 같은 사실은 신라 황룡사의 건립에 백제의 장인 아비지가초청된 사실과 일본에 조사공(造寺工)과 와박사(瓦博士)등 건축기술자를 보내 건축문화와 최신기술을 전하였다는 기록등을 통해 입증된다. 전라북도는 백제의 고토로서 백제의 융성했던 불교문화를 보여주듯 풍부한 불교문화 유산을 남기고 있다. 특히 금마를 중심으로 한 익산지역에는 백제 최대의 사찰인 미륵사지를 비롯하여 사자사지, 제석사지, 오금사지 등 백제시대 여러 절터가 있으며 금산사, 선운사,내소사, 개암사 등 도내 큰 사찰들도 대부분 백제시대부터 기원한다. 그러나 백제의 건축은 신라의 삼국통일 후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서서히 잊혀져 갔다. 하지만 근래 꾸준한 발굴조사를 통해서 몇몇 사찰은 배치구조가 밝혀졌고, 초석과기단 및 출토유물 등을 통해 그 때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미륵사는 규모 뿐 만 아니라 유적의 잔존상태,출토 유물 등을 볼 때 우리지역의백제 문화를 대표하는 유적이다.미륵사는 왕실경영의 국가적 사찰로서 삼원병렬식의 독특한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탑과 금당으로 이루어진 동원, 중원, 서원이 동서로 나란히 자리하고 있으며, 각 원은 회랑으로 구획되어 각각이 독립된 영역을 이루었다. 동원과 서원 뒤로는 승방이 이어지고 북쪽에 긴 강당이 이들을 통합하여 거대한 가람을 형성한 이와 같은 배치는 당시 일반적인 백제 가람과는 다른 특이한 구성이다.백제의 가람배치는 남북을 축으로 하여 중문-탑-금당-강당이 차례로 배치되며 중문에서 강당까지 주위에 회랑이둘러져 있는 1탑식 배치를 정형으로 하고 있다. 미륵사도 각 원 하나 하나를 보면 중문-탑-금당이 남북축 상에 위치하고 뒤쪽의 강당을 3원이 공용함으로써 백제의 1탑식 배치형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그러나 타 사찰과 구분되는 것은 세 곳에 각각 별도의 탑과 금당을 나란히 마련한 것이다.이 같은 모습은 삼국유사의 기록과도 일치하고 있다.미륵사의 배치는 미륵이 하생하여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고 3번의 설법을 통하여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경전의 내용을 구상화해 놓은 것이다. 곧 용화삼회(龍華三會)를 위한 3곳의 설법처를 마련한 것으로 여기에는 불교의 이상향에 대한 상징성이 담겨져 있다. 또한 미륵사는 사역 전체가 완전한 기하학적 구도에 의해 계획되었다.전면 회랑 양끝과 강당 후면 중심부가정확히 한 변 490척의 정삼각형을 이루고, 그 밖의 각 부분들도 정사각형, 정삼각형, 팔각형에 맞아떨어지는 위치와 크기로 자리잡고 있어 처음 가람을 구상하면서 완벽한 계획 하에 조영되었음을 보여준다. 가람배치의 기하학적 균제성은 다른 절터에서도 볼 수 있는 고대 가람의 하나의 특성이다. 그러나 불교가 다양한 신앙대상을 갖추면서 사찰의 구성은 변화되었다. 특히 신라 말 선종과 풍수지리의 영향으로 산지가람이 주류를이루면서 평지가람의 대칭적 규범은 깨지게 된다.신라 이래로 불교는 석가모니에 대한 예불 외에도 서방 극락정토를 현세에 이루고자 하는 정토신앙이나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화엄신앙, 미래불을 예배의 대상으로 하는 미륵신앙 등이 널리 유행하였으며, 이들 각각의 신앙은 이후에 하나의 예불공간으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사찰에는 석가모니를 모신 대웅전 외에도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 미륵불을 모신 미륵전이나 용화전 등 여러 전각이 나타나게 되었고 이 밖에도 관음보살을 모신 관음전이나 약사여래를 모신 약사전 등 수많은 전각들이 절을 구성하게 되었다. 도내 2개의 조계종 본사 가운데 하나인 금산사도 창건 시에는 소규모사찰에 불과했으나 통일신라시대 진표율사의 중창으로 대찰로서 면모를 갖추며 미륵신앙의 토대를 이루었고, 고려 문종대에 혜덕왕사가 주지로 부임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는다. 그는 원래의 절을 사찰 전체를 관할하는 대사구로 하고, 대사구 남쪽에 광교원구 동북쪽에 봉천원구를 신설하여 기능에따라 사찰을 세 구역으로 나누어 구성하였다.대사구는 3층의 장육전과 대웅대광명전을 중심으로 영산전, 극락전,문수전, 나한전등 60여 동의 전각으로 구성되었으며, 봉천원구는 대광명전을 광교원구는 보광명전을 중심으로 하여 각각 10여 동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각 구역은 20간 규모의 주불전을 중심으로 별도의 예불공간을 형성하였으며 또한 영역마다 3층의 종루가 세워져 있어 탑과 금당의 주위를 회랑으로 둘러싼 단순한 고대 사찰과는 전혀 다른 구성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금산사의 많은 전각들은 정유재란 때 모두 소실되었다. 임진왜란 때 뇌묵당 처영대사가 이곳을 중심으로 천 여명의 승병을 모집하여 왜적에 대항한 것에 대한 보복 때문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도내 뿐 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사찰들도 마찬가지였다. 두차례의 왜란과 호란으로 우리의 건축문화재들은 석조물을 제외하고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전국적으로 고려말 조선 전기 불전으로 이해되는 사찰건축은 10여 채에 불과하며 도내에는 전무한 실정이다. 하지만 종전직후, 17세기에 활발한 사찰의 재건이 있었다. 여기에는 승병의 참전으로 나라를 구했다는 불교에 대한 인식의변화도 작용했다. 현존하는 도내의 사찰건축들도 대부분 양란 이후에 새롭게 중건된 것들이다. 금산사는 선조 34년(1601)에 수문대사가 재건을 시작하여 인조 13년(1635)에 대사구 일부만을 재건하였고, 도내 또 다른 본사인 선운사도 백팔구료의 우람한 대가람이 병화로 소실되어 이 때 다시 중건하였다. 이밖에도 화암사, 내소사, 개암사,귀신사, 송광사 등도 17세기에 중건된 것이다.이때의 중건은 전후의 어려운 경제적 여건으로 단숨에 이루어지지 못하고,옛날과 같이 장대한 건물로 재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사찰의 복구는 꾸준히 지속되었으며, 한편으로 불교계의 새로운 풍조를 반영하여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조형과 구성을 갖추기도 하였다.전북 지역에서 가장 먼저 복원된 건물은 화암사 극락전과 우화루이다.중창기에 의하면 화암사는 1425년부터 1429년에 걸쳐 당시 공조판서였던 성달생이 중창하였으나 정유재란때 절의 일부가 불에 타 1605년에 극락전을 재건하고 1611년에 우화루를 중창하였다. 이어서 선운사 대웅보전(1614-1619),송광사 대웅전((1623), 내소사 대웅보전(1633), 금산사 미륵전(1635), 개암사 대웅보전(1636), 선운사 참당암 대웅전(1642)이 중건되었고 숭림사 보광전과 귀신사 대적광전도 17세기에 새롭게 지어졌다. 모두 국보 또는 보물로 지정된 우리의 중요한 건축문화재인데 그 중에서도 금산사 미륵전은 전남 화순의 쌍봉사 대웅전이 불탄 후 국내 유일의 3층 불전이며,화암사 극락전은 현존하는 유일한 하앙식(下昻式) 건물이다. 하앙은 지붕의서까래와 도리 밑에서 밖으로 뻗어 나와 처마를 받쳐주는 경사진 부재를 말한다. 보통 내단은 보나 도리에 고정시켜 지붕 상부 하중을 받게 하고 외단은 처마를 받치게 하여 두공을 중심으로 서로균형을 이루는 구조이다. 일찍이 중국에서 발전된 형태로서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흔히 사용된 구조였으나 우리 나라에서는 이 건물이 알려지기까지 유물 등을 통해만 그 존재를 추정해 볼 수 있었다. 하앙은 부여박물관에 소장된 백제시대 금동제 소탑편이나 간송미술관의 금동불감에서 볼 수 있으며, 또한 백제 장인에 의해 지어진 일본 법륭사의 금당과 오중탑에서 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 신라 보다 백제에서 성행했던 하나의 양식으로 추정되어 왔다.그러던 중 1970년대 말에 화암사 극락전이 조사보고 되면서 그 존재를 확인하게되었고 이를 통해 백제 건축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추정해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하앙재외에 화암사 극락전의 전체적인 모습은 이 시기의 보편적 특성을 띄고 있다. 17세기에 중건된 건물들은 전부터 내려오던 전통적 건축술을 그대로 활용하여 건물의 복구를 시도하였고 한편으로 불교계의 새로운 요구를 반영한 건물의 장식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불전에 장식을 가미해서 장엄함을 더하는 것은 불교건축의 오랜 전통이었다.불상을 금빛 치장하고 탱화로서 내부를꾸미는 것도 그러한 장엄의 한가지 방법이다. 이러한 장엄이 불상의 주변뿐 만아니고 내부 전체로 이어지고 건물의 외부로까지 확대되기 시작하는 것이 이 시기 사찰건축의 특징이다. 불전의 내부는 화려하게 조각된 불단을 비롯해서 불상 뒤에는 화사하게 채색한 불화가 걸리고 불상의 머리 위에는 용과 구름 등을 조각한 닫집이 천장과 조화를 이루며 설치되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개암사 대웅보전과 숭림사 보광전은 용과 봉황, 연꽃 등 불교적 상징물로 법당 안을 가득 채워 불국토를 장엄하였고 공포의 형태도 연꽃이 올라가며 겹겹이 피어 있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아울러 창살조각에도 또 다른 장엄 효과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데 내소사 대웅보전은 전면 문짝을 모두 연꽃과 국화꽃 등 각기 다른 모양의 꽃살들로 정교하게 장식하였다. 한편 이 건물은 유연하며 장식적인 공포의 모습과 귀포를 장식하는 용두 등에서 조선 후기의 수법을 볼 수 있다.불전의 장식성은 18-19세기에 더욱 진전을 이루었다. 도내 사찰 중에서는 상주사 대웅전(전북 유형문화재 37호)과 선국사 대웅전(전북 유형문화재 114)등에서 후기적 장식성을 볼 수 있으며, 내소사 대웅보전은 중건 후에 중수하면서 공포부가 변화된것으로 보인다. 목조건축은 구조적 특성상 100∼150년에 한번씩 커다란 중수가 이루어지며 도중에도 크고 작은보수가 이루어진다. 누수와 해충에 의해 썩은 기둥과 연목을 교체하기도 하고 과다한 하중과 지반 침하 등에 의해 기울어진 건물을 바로 세우기도 한다. 따라서 한 건물에도 구부재와 신부재가 섞여 있게 되어 기법의 변화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선운사 참당암대웅전은 건물을 중수하면서 옛 부재를 배면 공포에 사용하였다. 여기에는 전면에서 볼 수 없는 굽받침 있는 주두와 소로가 남아있는데 이 부재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나타나며 고려의 건물에서나 볼 수 있는 고식(古式)의 기법이다. ▲홍승재교수는홍익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93년부터 원광대 건축공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현재 전라북도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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