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시민교육, 우리는 잘 준비하고 있는가
민주시민교육, 우리는 잘 준비하고 있는가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2.07 15: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희수  전라북도의회 교육위원회 부위원장
김희수 전라북도의회 교육위원회 부위원장

 

고등학교 3학년들의 졸업이 시작되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보내는 ‘교복을 훼손하는 등의 행위금지’라는 안내 문자를 통해서도 12년 동안 공부의 무게에 짓눌려온 아이들의 해방감이 어떨까? 에 대한 생각은 쉽게 전해진다. 스스로 자신의 배움을 선택한 아이들의 졸업식 풍경도 이럴까?
지금 학교 현장은 민주시민교육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연말에 교육부가 ‘민주시민교육 활성화를 위한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나서부터다. 올해 51개교 내외의 민주시민학교(가칭)을 선정해 체계적인 참여, 협력형 민주시민교육을 지원하고, 오는 2022년에는 ‘시민’과목도 개설해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해나가는 민주시민을 양성’한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그리고 학교 현장은 또 하나의 해결해야 할 숙제를 떠안은 것처럼 요란하다.
전라북도 교육청은 올 해부터 민주시민교육과를 만들어서 이러한 민주시민교육의 산실이 될 수 있게 하겠다고한다. 우리는 과연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이해와 이를 잘 수행할 준비를 하고 있는가?
민주시민교육을 아이들의 배움 속으로 가지고 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박근혜정부를 무너뜨린 ‘촛불혁명’의 원동력이 ‘광장민주주의를 통한 국민의 의사결집’이었고, 이를 가능하게 한 ‘올바른 사회를 만들겠다는 국민적 민주의식, 또는 시민의식’이 시민의 일상 속으로, 그리고 아이들의 배움 속으로 파고 들어서 안전하고 단단한 ‘건강한 시민의식’을 사회 속에 뿌리내리자는데 있다. 그런데 이러한 취지의 민주시민교육이 학교 현장에서는 변질되어 가는 것 같다. 회수(淮水)를 건넌 귤이 탱자가 되어가는 것처럼.
첫 번째, 교과목처럼 이해하는 것은 아닌가? 민주시민교육이라고 하면, 독일이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시작했던 민주시민교육을 원본으로 삼고 있다.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한 독일의 각 정당들이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홀로코스트와 같은 학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그러한 이유로 지금 우리나라의 민주시민교육을 얘기하는 현장에서는 아무 거리낌 없이 독일의 민주시민 교육방법을 놓고 배움을 시작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가 아니고 `누가?' 와 `왜?', `무엇을?'이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민주시민교육과정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여 교조적으로 활용한다면 이 또한 새로운 교육 폐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두 번째, 보이텔스바흐협약은 옳은가? 지금 민주시민교육을 논하는 자리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얘기들이 보이텔스바흐협약이다. 그러나 이 협약의 가치에 대한 부분은 논외다. 절대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보이텔스바흐협약은 정치적 중립에 기반한 정치교육지향이다. 교사의 교화나 주입식 교육을 금지하거나 정치사회적인 현안에 대해 논쟁적인 토론을 지향한다는 것 등이 이를 방증한다. 문제가 파생되는 지점이다. 정치적 중립에 기반한 정치교육이 가능한가? 오히려 협약을 넘어서고 금기를 이야기하는 토론이 필요하지 않을까?
언젠가 전교조에서 세월호 교과서를 만들어 계기수업을 한다고 했을 때 교육부가 이를 문제 삼은 적이 있었다. 교사들과 아이들이 교실에서 세월호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민감한’사안으로 보고 원천봉쇄를 한 것이다. ‘정치적 중립’이란 가능한 사안이기는 한 것인가?
세 번째, 주체가 사라졌다. 교육가족들이 함께 자리한, ‘민주시민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주제의 민주시민교육 세미나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민주시민교육’이 이미 잘 못된 길에 들어서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교장들이 학교 안에서 교사들을 통해 교육과정으로의 민주시민교육을 성실하게 수행하겠다는 얘기들을 너무 쉽게 하고 있었다. 민주시민교육의 주체는 교장이나 교사가 아니다. 민주시민교육은 학생들이 가진 지식 관점, 해석에 기반을 둔 출발을 해야 한다.
청소년의 경험을 예비적인 것으로 취급하며 또 하나의 교과목으로 민주주의를 실험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고, 함께 살아가는 동등한 시민이자 교육의 주체로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들에게 주체로 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이라는 틀에 어떤 이미지를 불어넣고 있으며, 그것이 누구를 주체로 설정하고 있는 것인지, 혹시 그 ‘시민’의 범주 안에 아이들은 없는 게 아닌지? 짚어보아야 한다. 아이들을 대상화하는 어떤 교육도 민주적이지 않다는 것을 잊지 않길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