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에 파수꾼이 되는 것이 어려운가?
호밀밭에 파수꾼이 되는 것이 어려운가?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5.13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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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좋은 것도 다음 세대엔 틀릴 수 있어
스스로 올바른 세상 만들고 상상하는 것 중요해”
이 강 휴-군산휴내과 원장
이 강 휴-군산휴내과 원장

필자는 드라마를 많이 보는 편이 아니다. 아내와 함께 우연히 학교폭력과 관련된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드라마를 접하게 되었다. jtbc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이다. 청소년들 사이의 학교 폭력의 측면과 친구를 지켜 주고 싶은 청소년, 그리고 폭력을 감추기 위한 어른들의 일그러진 세상에 대해서 그려가고 있다. 이 드라마를 이끌고 있는 책이 있다.  J.D. 샐린저의 <호밀밭 파수꾼>이다.
선호라는 청소년을 향해 친구들은 폭력을 가한다. 선호는 준석에 의해 성폭행 당한 다희를 지켜 주고 싶었을 것이다. 또한 죄를 지은 준석이도 친구이기에 어른들에게 죄를 고백하라고 용서할 기회를 주고 싶어 학교 옥상에서 만났을 것이다. 그러나 준석이의 그런 적이 없다는 거짓말에 분노한 선호는 몸싸움을 하며 결국 옥상에서 떨어진다. 선호는 결국 학교에서 추락을 하고 식물인간이 되어 기계호흡으로 견디고 있다. 이를 지켜보고 자책하는 부모. 특히, 오빠에게 잘해 주지 못해 괴로워하는 여동생 수호가 특히 눈길이 간다. 이들 가족은 추락사고의 원인을 찾기 위해 애를 쓰지만, 감춰진 권력에 의해 점점 지쳐간다. 이를 알게 된 준석이의 부모(학교 재단 세아 이사장)는 아들의 죄를 감추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아들을 지키려고 한다. 그 권력의 힘으로 경찰과 학교는 방관하게 만들고, 한 아이의 억울함보다 자기 아이들에게 피해가 될까봐 전전긍긍하면서 선호와 가족들을 외면하고 오히려 상처를 더 주는 학부모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홀든의 눈에 비친 세상은 겉으로는 정의를 외치지만 자기만족과 물질적인 이익을 위해 일하는 어른들, 가식과 기만으로 비쳐진 학교와 교회,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어른들에 대한 비판으로 보여 진다. 그럼에도 방황하던 홀든 코필드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여동생 피비. 사랑스런 여동생을 지켜주고 싶은 어른이 되고 싶어한다. 홀든 코필드는 수천 명의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은 위험성을 염려한다. 그래서 자기는 아득한 절벽 옆에서 혹시나 모를 아이들이 떨어지려고 하면 붙잡아주는 일을 하려고 한다.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어 한다.
바보 같은 이야기로 보일지 몰라도 홀든 코필드는 사랑스런 아이들이 맘껏 뛰놀다가 위험한 상황에서 아이들을 지켜 주고 싶은 파수꾼이 되고 싶어 한다.
 <아름다운 세상>의 드라마가 한참 진행하고 있는 중간이라 결말은 아직 모른다. 어른들은 순수하지 못하다. 어른들은 자신들의 말이 늘 맞다고 생각한다. 청소년들의 세계(기준)가 다르기 때문에 어른들의 세계(기준)로 평가하면 안 된다. 순수하지 못한 어른들에 의해 점전 변해 버리는 청소년(준석)을 보면 가장 안타깝다. 평생을 죄책감의 짐을 지고 살아가야한다. 그나마 청소년이라 솔직하고 순수할 것이라는 생각도 이제는 순진한 상상인지 모른다. 어른들에 의해 변해버린 청소년의 모습들은 어디까지 자신을 파괴해갈지 위험해 보인다. 멈춰서야 할 때 어른들이 더 자극하고 감정을 억누른다.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바라볼 용기가 없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편할까? 평생 불안, 죄책감, 그리고 약물을 의지하면서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하는 어른들. 남편과 아내를 지키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남편도 아내나 아들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과 재단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모두가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인생을 산다. 타인(아들, 아내, 남편,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인생은 없다. 나를 위해 아내도 있고, 남편도 있고, 자식도 있다. 점점, 엄마도, 아빠도, 아들 청소년도 괴물이 되어간다. 모두가 비정상이 되어간다.
죄책감을 갖는 순간 죄인이 된다고 가르친다. 죄도 죄책감을 갖지 않으면 죄가 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점점 감정과 양심은 없고, 누구도 믿지 말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면 어느 순간 지나가고 사라진다고 한다.
스스로 자기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 점점 망치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자신을 지켜야만 하는 가면 쓴 어른들, 언변으로, 논리로 죄를 정당화한다. 언변과 논리가 이기면 죄도 죄가 되지 않는다. 더 완벽해진다. 점점 더 두꺼운 가면을 쓴다. 가면을 벗어버릴 용기가 없다. 가면을 벗는 순간 잃어버릴 것이 너무 많아 두려울 것이다. 언제든지 원위치로 돌려놓아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지금 원위치로 돌려놓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시간이 지나는 만큼 그 고통은 더 오래간다. 돌려놓는 시간을 놓쳐 버린다.
어른들은 착각을 한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기준)이 항상 옳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것도 지금의 청소년(다음 세대)에게는 틀릴 수 있다. 스스로 올바른 세상을 만들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시대는 언변과 논리로 자신을 잘 방어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들(청소년)이 벼랑으로 떨어지는 것을 지키기 위해 그 자리를 지켜주는 바보 같은 파수꾼(어른들)이 되는 것은 어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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