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지방법원과 검찰청이 전주 덕진동에서 만성동 법조타운으로 청사를 옮겼다. 43년 만에 이른바 ‘만성동시대’를 연 것이다. 16일에는 이전식을 갖고 본격적인 업무도 시작했다. 기존 청사보다 넓고 현대화된 시설을 갖췄다. 현대적 시설 못지않게 검찰청 현관로비 벽에 걸린 서예작품이 눈에 띤다. 빼곡히 쓴 문장 한 가운데 용이 승천하는 모양을 새긴 전각 낙관도 찍혔다. 율곡선생의 자경문(自警文)이다. 작품 공모에서 당선돼 자경문을 쓴 원광대 이승연 교수를 만났다./편집자 주

“개인적으로 영광이기도 하지만 검찰청사에 의미 있는 서예작품을 걸게 돼서 기쁘다”는 게 이 교수의 소감이다. 각종 미술대전의 초대작가와 심사위원을 지냈지만 공모 작품을 내놓고 기대도, 떨림도 있었다는 게 이 교수의 솔직한 심경.

이 교수는 “제 작품이 공모에서 뽑힌 것은 작품성보다는 의미가 깊은 내용을 쓴게 높은 점수를 얻은 것 같다”며 자경문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 교수가 쓴 자경문은 율곡 선생이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가 20세 되던 해 봄, 외가인 오죽헌으로 돌아와 앞으로 걸어 나갈 인생의 이정표를 정립하고, 그 목표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세워 스스로 경계하는 글을 지어 좌우명을 삼은 글이란다. 검찰청사에 내걸기로는 알맞은 글이라는 생각이란다. 이 자경문을 11조로 돼있는데 뜻을 세우는 입지(立志). 말을 삼가는 과언(寡言). 홀로 있을 때 스스로를 경계하자는 뜻의 근독(謹獨)등 율곡의 의지와 생활태도, 학문하는 자세 등이 망라돼있다.

이 교수는 자경문을 요약해 우리말로 풀어낸 것을 한글판본으로 쓴 작품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지키기 힘든 유혹과 고난이 많은데 율곡선생이 지어 좌우명으로 삼았던 자경문은 지금 읽어도 훌륭한 좌우명이 분명하다”는 게 이교수의 생각이다.

이 교수는 흔히 서예가들이 문인화를 함께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서정성이 짙은 문인화와 더불어 심향을 잘 표현하는 작가다.

지난여름에는 미국 보스톤에서 서예와 문인화 작품 전시회를 가지기도 했다. 해외 전시라는 게 전시공간만 확보한다고 되는 게 아닌데 의아했다.

“뉴햄프셔에 계시는 원불교 교무님이 제 작품을 보게 됐는데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정서를 보여주고, 이해하기 좋은 작품이라고 과찬하시면서 주선해주셨다”고 한다.

뉴햄프셔주에 있는 “Soo Rye Art Gallery”에서 3주간 연 전시회는 대성황을 이뤘다.이 또한 문화체육관광부와 전북문화관광재단의 후원으로 이루어져 한국의 문기와 예술정신을 알리는 좋은 기회뿐 아니라 미국현지인, 교포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이 교수는 동양화의 소재를 쓰이는 매화와 난초, 국화, 대나무외에 능소화와 동백, 모란, 복숭아와 감까지 한국의 서정과 향토미를 드러낼 작품을 내놓은 게 외국인들의 관심을 산듯하다고 설명한다.

전시하는 것으로 충분한데 무려 30여점이나 높은 값에 팔렸다. 미국인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보스톤컬쳐협회에서 초재해 남은 작품만으로 전시회를 또 가졌다.

전시 기간중 미국인 조각가 및 서양화가, 러시아인 뮤지엄과의 콜라보 퍼포먼스는 동서양 예술융합의 한 장면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 교수는 뉴욕 콜라보 행사를 계기로 더 많은 해외전시회를 기획중이다. 이 교수는 전업 작가가 아니다. 본인의 작품 활동 뿐 아니라 학교에서 후진양성을 위해 강의하는 게 본업이다. 한데도 해외 전시에 욕심을 내는 것은 한국 예술작품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해외 전시를 하다보면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작품뿐 아니라 한국인의 정서와 민족성, 세계 속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치 등을 깊게 각인시킬수 있다”는 거다.

“현지에 거주하는 동포들에게도 자존감을 높이는 계기가 된다”는 게 이 교수의 생각이다.

이 때문일까. 이 교수의 해외전시 이력은 화려하다. 지난 2001년 호주초대전을 시작으로 한중일 전각교류전과 독일에서 열린 한국의 예술전(1998), 일본의 표현의 다양성전(2001), 필라델피아 초대전(2013), 올해 미국 뉴햄프셔에서 연 이승연 마음그림전 등이다.

작품과 전시도 서예와 전각, 그림 등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그렇다고 연구 활동에 소흘한 건 아니다. 1995년 석사학위 논문을 쓴 이래 학회지에 40여편 이상의 논문을 투고했다. 『전각의 이해』,  『한국서예사』를 비롯해 단독, 혹은 공동집필한 책이 8권에 이른다.

이 교수는 작품 활동과 연구, 강의 어느 것도 게을리 할 수 없단다. 세 가지 모두 한 몸과 같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작품 활동도 깊은 연구가 필요하고, 강의도 끊임없는 연찬과 피 말리는 작품 활동을 통해 풍성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는 지론이다.

이 교수는 원광대 서예과를 졸업한 뒤 불교학과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작품 활동과 강의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도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작가와 심사위원, 전북미전 초대작가와 심사위원·운영위원회, 한국미술협회 서예 분과 이사를 지냈다. 익산문화관광재단 이사와 원불교 서예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개인전 12회와 단체전 160회에 참여했다. 현재는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서예문화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