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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없음과 살아가는 일에 대하여

[책 마주보기] 임재성의 ‘마흔에 읽는 비트겐슈타인(서운정)’

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9월 22일 08시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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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남긴 이 문장은 철학이라는 건축물 속에 그리고 내 문학의 여정에 하나의 기둥처럼 우뚝 서 있다. 그것은 단지 언어의 범주를 말하는 기술적 정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명제는 우리가 이해하고 사유하며 존재하는 방식을 가장 깊은 차원에서 되묻는 질문이다. 언어는 세계를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세계를 규정짓는 틀이다. 우리가 어떤 단어를 알고 있는가, 어떤 말을 할 수 있는가,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는가는 곧 우리가 무엇을 삶으로 경험할 수 있는가의 조건이 된다. 그렇다면 말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 논고'의 마지막에 이르러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라고 선언한다. 하면, 침묵은 결핍의 결과가 아니다. 침묵은 어떤 사유의 가장 끝에서 도달한 윤리적 태도다. 그는 종교, 윤리, 죽음, 삶의 의미 같은 문제를 철학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다고 보았다. 논리적으로 서술될 수 있는 세계의 바깥에 존재하며, 이에 대해 말하려는 시도는 형이상학적 혼란을 불러올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말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사랑, 고통, 두려움, 그리고 믿음 이 모든 것은 문장으로 완전히 환원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만 설명할 수 없고, 때로는 침묵 속에서 그것들을 함께 견뎌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트겐슈타인이 강조한 침묵은 체념이 아니다. 그것은 말할 수 없음 앞에서 사유를 멈추는 절제, 존재 앞에서 무례하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철학이 거기에 머무를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지식을 말하는 학문'이 아니라 '삶을 감각하는 기술'이다.

'마흔에 읽는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사유를 삶의 언어로 번역하려는 시도이며 철학적 명제를 하나씩 꺼내어, 삶의 어떤 지점에 대입한다. “고칠 수 없는 것은 침묵하라”는 식의 문장은 '논고'의 마지막 문장을 떠올리게 하지만, 거기서 말한 침묵은 감정 조절이나 마음 다스림이 아니다. 그것은 철학적 책임, 곧 잘못된 질문을 던지지 않으려는 태도에 더 가깝다. 언어는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인 것이다.

우리는 “사랑해”라고 말하면서 사랑을 다 설명하지 못하고, “괜찮아”라는 말로 고통을 완전히 덜어낼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말들을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언어의 균열 속에서 우리가 어떤 말을 해야 하며, 어떤 말은 하지 않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이는 곧 윤리의 출발점이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는 일, 그것이 어쩌면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삶의 방향일 것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말을 하며 살아간다. 정보는 넘쳐나고, 문장은 부풀어 있으며, 판단은 빠르다. 그러나 이 세계가 더 명료해졌는지는 의문이다. 말의 과잉 속에서 오히려 세계는 더 낯설어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말의 본질을 물어야 한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는 나의 세계를 어디까지 확장시키는가. 그리고 나는 어떤 말 앞에서 침묵할 줄 아는가. 이 질문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철학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철학을 사는 것이다. 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시작되는 사유, 그것이 철학이 남긴 가장 조용한 유산이기 때문이다.



서운정 작가는



군산 출신으로, 제18회 ‘바다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솔바람소리문학회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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