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사는 수려한 자연에 묻혀있다. 그러니 또 얼마나 운치가 있을 것인가?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명산대찰이라는 관념에서 본다면 강천사의 위치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강천사는 조계종 제24교구인 선운사의 말사이다. 수말사는 아니지만 순창지역을 대표하는 사찰이니 사세가 어느 정도는 될 거라 여겼는데 앞서 이야기했듯 초파일에 절에 들어가는데도 입장료를 내야 할 정도로 힘이 없는 절이다.

지금의 위상으로 보면 그냥 조그마한 암자 수준이다. 군청 소유의 부지에 위치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땅을 갖고 있지 못하니 사세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사찰의 역사는 깊다. 기록에 의하면 887년(진성여왕 1년)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도선은 어떤 사람인가? 한반도 역사를 관통해 가장 빼어난 풍수지리학자였고, 또 우리 역사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불교 승려 중에 한 사람이다. 옛 백제지역 사람들의 앞길을 막아버린 고려태조 왕건의 훈요십조의 철학적 기반을 제공한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어찌하여 도선이 강천사를 창건했는지, 또 그 창건이 사실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창건했다을 그대로 믿기는 어려워 보인다. 신라말에 태어난 도선은 당시 지배층들이 선택한 길인 승려가 되기 위해 출가를 했다. 당시 열다섯 살이었는데, 전국의 여러 절을 떠돌며 수행했다고 한다. 그가 전남 광양 백계산 옥룡사(玉龍寺)에 머물면서부터 제자들이 몰려들었다. 항상 곁에 제자들이 수백 명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도선의 도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헌강왕이 궁궐로 불러 법문을 들을 정도였다. 이 일이 계기가 되었는지 그는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무너지는 신라의 기틀을 잡겠다고 떠난 유학에서 밀교 승려들로부터 뜻밖의 풍수지리를 배웠다. 밀교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불교의 한 가지이다. 스님이 무술을 하거나, 풍수지리, 도술을 부리는 것들 역시 밀교적 영향이다. 그러니까 불교 정통 사상은 아닌 것이다.

그의 풍수지리는 예언력이 강했다. 현재를 보는 풍수가 아니라 미래를 보는 풍수라서 신비함을 더했다. 예를 들면 ‘지금부터 2년 뒤 반드시 고귀한 사람이 태어날 것이다.’고 예견했다. 그리고 그 예언대로 개성에서 왕건이 태어난 것이다. 이런 일로 고려 왕조는 내내 도선을 존경하고, 그의 철학을 높이 샀다. 그런 예언력으로 도선은 인간이 아닌 신화적 존재가 되었고, 그러다보니 명성을 차용하거나 도용한 사찰들이 많이 생겨난 것이다. 도선과 별 인연이 없는 사찰들이 창건의 주체로 그를 끌어들인 것이다.

강천사 역시 창건주로 도선을 내세운 것은 그의 명성을 기대고자 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조그마한 암자 같은 절집이지만 도선을 내세울 정도니 역사는 깊다. 천년이 넘은 역사를 간직한 고찰이다. 긴 역사뿐 아니라 한때 번성했던 적도 있다. 1316년(충숙왕 3년) 덕현 선사의 도력으로 강천사는 일신한다. 덕현은 오층석탑을 세우는 등 사세를 키워 강천산 안에 12개 암자를 창건했다. 그때 승려만도 1,0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억불숭유 정책을 편 조선시대 초기 사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지역의 경제력도 빈약해서 옛 위상을 유지하기는 버거웠다. 조정은 조정대로 시끄러웠다. 왕자의 난이 일어나고, 결국 단종이 폐위되는 계유정란이 일어났다. 수양대군이 단종인 자신의 조카를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된 것이다. 이런 정란에는 반드시 충신과 역적이 있게 마련이다. 물론 그 때 권력에 불충을 역사가 충신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역사가 반드시 당시 힘 있는 자의 것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생육신과 사육신이 등장하고, 또 변절자도 생겼다. 신숙주의 동생 신말주는 단종 2년인 1454년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같은 해 식년시에 급제하여 벼슬이 대사간에 이르렀다 한다. 그런 그가 단종이 물러나자 순창으로 내려왔다. 형인 신숙주가 벼슬을 권했지만 거절하고 순창에 귀래정을 짓고 산수를 즐겼다고 하는데, 그의 부인 설씨가 불교를 숭앙했다. 나날이 사세가 기울어가는 걸 안타깝게 여기던 설씨의 후원으로 강천사는 다시 번성하게 된다. 1482년(성종 13)에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