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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내세요 역전인생 주인공, 고창출신 진현가수


기사 작성:  안병철
- 2020년 04월 01일 11시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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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의류재단탁자 위에서 침낭이 유일한 잠자리였고 장가가서는 갓 태어난 아기 울음소리 때문에 셋방살이 눈총을 받고 살았다”

1965년 보릿고개 시절에 가난해서, 혈육이 없어서 눈물로 태어난 진현(본명 조순희·사진) 가수가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신촌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연이 지역의 화제이다.

신기댁이라는 외할머니집에서 태어나 3살이 된 진현씨의 옆집에 동병상련처럼 나타난 6살 진성씨는 진현씨의 보호자이자이며 잊을 수 없는 형제우애의 증인이다.

당시에 두부를 직접 만들어 팔았던 안집의 이칠성씨는 “매일 띠뿌리를 캐고 나락 이삭을 줍고 소나무 송진을 잘라 먹으며 자란 두 의형제는 당시에 트롯트가 흘려 나오면 춤으로 외로움과 두려움을 달랬다”라고 회고했다.

이제는 당당한 중년신사가 된 진현씨는 그 시절 의형제 진성형님도 만나고 익산에서 연매출 30억원의 중소기업 섬유대표로 지내며 3남매를 훌륭하게 키운 역전의 주인공이 되었다.

특별히 그는 채널A에서 진행하는 ‘아이콘택트’ 프로그램에서 ‘가수 진성의 도플갱어 같은 고향 동생! 진성이 말하는 두 남자의 눈물의 사연은?’ 코너가 지난달 30일에 20만여명의 엄청난 시청과 함께 진현가수가 재조명되고 있다.

50년에 만난 트로트 국민가수 진성씨는 “부모 없이 외할머니 집에서 살면서 울음이 그칠 날이 없었던 진현 동생에게 힘이 되고 서로 버팀목이 되고 싶었다”며 “우연히 만났지만 어린 시절 아픈 기억이 두렵고, 평생을 그리워한 동생에게 눈물을 보이기 힘들었다”라고 털어 놓았다.

‘안동역에서’에 이어 ‘보릿고개’ 히트곡 가사 중에 ‘아 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는 진성가수가 20년전에 써 놓은 가사로써 초근목피 생계와 풀피리의 슬픈 곡조는 의형제 진현씨의 사연이다.

한편 30년 전부터 공장 퇴근 후 처자식 생계를 위해 지친 몸을 이끌고 야간업소를 뛰어야 했던 진현씨는 ‘청춘 고백’ ‘누가 울어’ 등 대중가요를 부르며 낮에는 섬유공장, 저녁에는 전자 오르간 연주로 아르바이트 수입과 함께 익산지역에 50여명의 팬클럽도 생겼다.

그는 최근에 고창의 농협과 문화센터, 모양성제에서도 노래 실력을 뽐내며 말 못하는 고향사랑을 눈물로 삼켜왔던 것이다.

그리운 어머니를 외치는 ‘허깨비’ 노래의 주인공 진현씨는 지난달 고창에 방문, ‘형제 노래비’를 간곡히 제안해 은사마을 김범재 이장을 비롯해 안경연씨 안종선씨, 이칠성씨 등이 힘을 보태고 있다.

가칭 ‘형제 노래비’에는 ‘가수 진성씨는 부안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갈 곳이 없어서 전전하다 할머니와 함께 고창에서 살게 되었다. 너무도 가난했던 터라 하루하루를 어렵게 보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진성과 똑 같은 처지에 할머니와 함께 사는 꼬마가 옆집에 살고 있었다. 그 꼬마도 외할머니가 전부였다’ 이처럼 피보다 더 진한 형제사랑이야기이다.

젓소 농장부터 구두 닦기, 신문배달, 중국집, 의상실 등을 전전긍긍하며 생계를 유지했던 진현씨는 마침내 익산의 태창메리야스 직공에서 대표 자리까지 오르며 섬유 명장, 중소기업 사장으로 명성도 쌓아가고 있다.

이는 마치 이순신장군의 명언에서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몰락한 역적의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외갓집에서 자랐다’를 상기 시키며 지역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그는 “더 발전된 모습으로 성장해 가난한 이웃에게 버팀목이 되어 주고 감동의 가수가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고창=안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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